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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VIBE] 건축가 김원의 세상 이야기⒂ 심장에 남는 사람
기사 작성일 : 2024-11-05 16:00:07

[※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팬은 약 2억2천5백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의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김원 건축가


건축환경연구소 광장제공, 사진가 김중만 작품

20년 전 평양 방문기를 지난번 칼럼에 이어 연재한다.

평양 방문 2일 차 관광 후 저녁 식사하느라 이동했던 차에 다시 올랐다. 아침에 성당에 가느라고 내게 배당됐던 1호차가 바뀌어서 2호차의 여성 안내원이 내 옆자리에 앉게 됐다.


북한의 들녘


자료사진

저녁 식사 후 호텔로 돌아오는 길, 자연스럽게 종교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종교가 없어요. 수령님과 주체사상을 믿디요."

예쁘게 생긴 얼굴과는 달리 차가운 대답이다. 그러더니 얼른 화제를 바꾼다.

"건축가 선생님은 좋으시겠어요."

이 안내원은 나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알고 있는 모양이다. 물론 모든 사람에 대해서 미리 공부했겠지.

"좋다니 무어가?"

그는 망설이지 않고 준비한 듯한 대답을 했다.

"건축가는 본인 일생보다도 작품이 오래 남지 않아요?"

당돌한 질문이다.

"그야 뭐…. 그렇지만 또 그만큼 책임도 크지. 만일 뭘 하나 잘못하면 그 잘못된 것이 그만큼 오래 남을 테니까."

잘 알아들을까 모르겠다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그냥 그렇게 이야기했다.

"자기 '리상'과 '리념'에 충실하면 그런 일은 없겠지요. 선생님 리념은 무엇이디요?"

또 당돌한 질문이다.

"난 환경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주장이야. 남쪽은, 특히 서울은 환경 문제가 심각하거든."

이 말에는 처음으로 약간 어리둥절해한다.

"우리는 건축에 사회주의 형식과 민족주의 형식을 배합하여 우리식의 건축을 만들고 있지요."

햐, 대단하다. 나는 얼른 수첩을 꺼내 그의 이 말을 기록했다.

"동무 정말 대단하군. 그런 걸 언제 다 배웠지?"

김일성대학 조선어학과를 나왔다는 인텔리라지만 내가 북에 와서 궁금해하는 점을 꼭 꼬집듯이 이렇게 대답을 한다는 건 어린 나이에 안 어울린다.

"나도 처음에 건축 공부를 하고 싶었어요."

이번엔 내가 화제를 바꾸고 싶어졌다. 잘못하다간 주체사상 교양으로 시간을 다 보낼 판이다.

"안내원 동무는 목소리가 참 좋군. 노래 하나 불러줄래? '심장에 남는 사람' 알아?"

그가 갑자기 여성으로 돌아왔다.

"노래야 저 동무가 잘 불러요. 꾀꼬리 목소리니까요."

그가 뒷자리의 다른 안내원을 가리켰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 동무는 나중에 하고 동무가 먼저 하라우."

장난으로 한 내 말에 어럽쇼, 이 사람, 벌떡 일어나더니 차 앞쪽으로 걸어가 마이크를 뽑아 든다.

"인생의 길에 상봉과 리별 그 얼마나 많으랴, 헤여진대도 헤여진대도 심장 속에 남는 이 있네. 아아, 그런 사람 나는 못 잊어. 오랜 세월을 같이 있어도 기억 속에 없는 이 있고, 잠간 만나도 잠간 만나도 심장 속에 남는 이 있네. 아아, 그런 사람 나는 귀중해."


북한 안내원이 수첩에 써준 노랫말


김원 건축가 제공

아주 단순한 가사에 단조로운 곡조였지만 이 북한 땅에서 '피바다' 이후에 '휘파람'을 거쳐 이제 이런 사랑 노래까지 온 것은 대단하다. 그는 지그시 눈을 감고 그 노래, '심장에 남는 사람'을 2절까지 부른 다음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다 같이 부르자며 세 번을 반복했다.

"동무 진짜 노래 잘 부른다. 음악을 전공해도 훌륭했겠어. 얼굴도 평양에서 제일 예쁘고."

얼굴이 빨개졌다. 자기 수첩을 찢어 노래 가사를 적어주는 사이, 차가 호텔에 다 와서 내릴 때가 되자 그가 말했다.

"내일은 2호차로 전향(轉向)하시라요."

◇ 학생소년궁전과 김일성대학

다음 날 아침에는 이번 우리 여행의 진짜 목적인 '평양 어깨동무 어린이 병원' 준공식이 있었다. 병원은 동대원구역 새살림동 대로변에 1천300평 크기로 밝고 번듯하게 세워졌다. 권근술 '남북어린이 어깨동무 재단' 이사장과 서울대병원 의사들이 오랜 고생 끝에 이 건물을 만들었다.

그리고 설계를 함께했던 황영현 소장도 아홉 번씩이나 평양을 다니면서 엄청나게 고생했던 모양으로 나에게 속내를 털어놓으며 눈물을 글썽이는 것이었다. 건물은 2층으로 연면적이 1천300여평, X-ray, 초음파 등 여러 가지 검사 기재와 치과 세트 등 치료기구를 서울대 어린이병원에서 기증하였고, 마감재, 금구류, 조명기구의 일부도 국내 기업들이 보내 줬다.

현관 입구에는 커다란 동판에 내 이름 두 자를 포함해, 기증자의 이름을 새겨 붙였는데, 그것은 조금 의외의 일로 보였다. 지금까지 북조선에서는 이런 모든 것을 철저히 인민에게 감추고 있었다고 알았기 때문이다.

그 전에 남측의 여러 분유 회사에서 어린이용으로 분유를 많이 보냈다. 그런데 이곳 아이들이 그걸 소화를 못 시켜 설사하는 바람에 시작된 아이디어가 병원 뒤쪽에 잇대어 함께 준공한 두유 공장 세우기다.

여기서는 하루 5톤의 콩 두유를 '아기 젖'이라는 이름으로 생산해 하루 3천500명 어린이에게 공급한다. 콩은 여기서도 논두렁 밭두렁에서라도 쉽게 기를 수 있는 원자재이고 무엇보다도 어린아이들이 소화를 잘 시킨다는 설명이다.

한 가지 더 인상적인 일은 이 공장의 생산 설비도 모두 남쪽에서 제공한 것인데 '대구 00 기계 제작소'라는 등 기계마다 출처가 선명하게 밝혀져 있어서 의아했다. 그리고 이날 행사는 저녁 '로동신문' 석간에 자세히 소개됐다.

나는 늘 관련 기사를 스크랩하던 버릇대로 이 신문 한 장을 얻어 갈까 잠시 생각을 하다가, 그것도 국정원에서 보면 '이적 표현물'로 볼 수 있겠다 싶어 그만뒀다.

준공식이 끝나고 병원 일꾼들과 어린이들의 '렬렬한' 환송받으며 작별을 고하고 점심을 먹으러 고려호텔로 갔다. 우리 신라 호텔쯤 되는 최상급 식당이다.

나는 이곳에 온 후, 매일 너무 좋은 음식을, 너무 많이 먹고, 너무 많이 남기곤 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것이 마음에 좀 켕겨서, 정말 이래도 괜찮은 것인가를 생각해 봤다.

그 이야기에 대해 나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국제적인 기준으로 보아 판단하건대 그들은 거의 국제적인 기준으로 음식과 숙박비를 매기고 있고, 그런데도 이곳의 물가는 생각건대 우리의 1/10 정도가 될 것이므로 우리에게 이렇게 먹이고 많이 받도록 하는 편이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길일 것이다.

그러므로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나오는 대로 잘 먹어 주자.

점심 후에 민화협이 우리를 안내한 곳은 평양 제4소학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다녔다는 시범 초등학교다.

이 사람들이 우리에게 무엇 하나라도 더 보여주고 싶어 하는 열정은 놀라울 지경이다. 하여튼 감사할 일이지만 또 바꾸어 생각해 보면,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를 조금이라도 교화시켜 보려는 눈물겨운 노력같이도 보일 수 있을 것이다.

왜 그런 생각을 했냐면 이 소학교는 거의 완벽히 전시용, 과시용으로 운영되는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일행에는 남측 어린이 대표 10명이 포함돼 있으므로 어린이들끼리의 교류가 전혀 의미 없는 일만은 아니다.

그런데도 이 학교 어린이가 준비한 음악, 무용 발표는 너무도 잘 훈련되고, 조직된 것이어서 정말로 마음에 와닿지 않는 것들이었다. 왜 이 사람들은 그런 역효과를 눈치채지 못하고 이렇게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것인지 답답해진다.

다음에 들린 학생소년궁전에서 그 답답함은 극에 도달했다.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영재를 조기 발굴하여 재능교육을 한다는 곳인데, 500명의 어린이가 각기 학교가 끝난 후 모여서 80개의 소조(小組)로 나뉘어 특별활동을 교육받는 곳이다.

물론 엄격히 선발된 특수층의 자제들일 거라고는 생각이 되지만 우리가 구경한 수영소조, 탁구조, 태권도조, 피아노, 손풍금, 동양화, 자수 같은 것들만 보아도, 이건 거의 어린이들의 자발적 특활이라기보다는 철저한 반복 훈련으로 닦아진 고도의 훈련 결과로 모두가 거의 곡예사의 경지에 이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생각해 보라. 여섯 살짜리의 10m 하이 다이빙, 다섯 살짜리 꼬마(정말 세 살로밖에는 볼 수 없는 꼬마)의 놀라운 탁구 랠리, 이런 것들에 우리가 박수를 보내는 마음이 별로 가볍지만은 않다는 것을 이들은 모르는 걸까?

하여튼 개별 소조를 둘러보고 나서 대강당(한 2천명은 들어가지 않을까)으로 안내돼 김일성을 꼭 닮은(우리는 그가 틀림없이 김씨 집안의 가까운 친척일 거라고 입을 모았다) 교장선생 입회하에 벌어진 장기자랑 시간에는 또 한 번 놀랐다.

가히 세계적으로 훈련된 프로팀의 놀라운 공연을 보여 줬다. 아이들은 깜찍하다 못해 징그럽게도 잘했다.

그러나 그게 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 어린이들은 오히려 지금쯤에는 마음대로 뛰어놀고 실컷 먹고 자고, 마음 놓고 어리광을 부려야 할 나이가 아닌가?

더욱 내 마음을 산란하게 하는 것은 으리으리한 대리석 '궁전'이다.

직선으로 설계된 것을 지도자 동지께서 '아이들을 품어 안으라는 갸륵하신 뜻'으로 곡선형 평면으로 바꾸도록 '지도'하셨다는 속사정을 듣게 됐다. 과장된 스케일의 신전 같은 건물과 그 앞 거대한 광장은 귀신들이 모여 사는 '신전'(神殿) 같이만 보인다.

밤에, 여러 날 사양하다가 결국 이기지를 못하고 한용외 삼성문화재단 사장의 강권에 못 이겨 우리 호텔 47층의 바(bar)에 가서 김일성 배지를 늘 달고 다니는 젊은 안내원 선생과 어울려 술 시합이 벌어졌다.

물론 북한 안내원은 될 수 있으면 술잔을 피하는 잔꾀를 부렸고, 우리는 주는 대로 마구 퍼마셨다.

회담이니 뭐니 일이 있을 때마다 남쪽에 여러 번 와봤다는 이 안내원들은 폭탄주도 알고, 그 막강한 효력도 알고 있어, 남측 인사들의 거친 술 매너에 지레 겁을 먹고 있었다.

반면에 우리는 백두산 들쭉술과 금강산 석이(돌버섯)술이 너무도 맛이 좋고, 잘 훈련받은 접대원 동무들이 너무도 예쁘고 마음에 들어서 남이고, 북이고를 다 잊고 신나게 마셨다.

이 북녀(北女)들은 예의도 바르고 말대꾸도 잘한다. 술을 따르는 데 쭈뼛거림도 없다. 그래서 누군가가 물었다.

"아가씨, 학생소년궁전 출신 아니야?"

"아니야요, 김일성대학이야요."

옛날 서울에서 룸살롱의 어느 아가씨나 이대 출신이라던 말이 생각났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다르다. 김대 출신이란 게 거짓말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다.

남남북녀(南男北女), 오랫동안 귀에 익어 온 말이지만, 여기 며칠 새, 그 말을 실감한다.

마치 미스 평양 컨테스트라도 하듯, 미인만을 모아 놓았다.


"반갑습니다"


29일 오후 금강산 김정숙 휴양소에서 열린 제9차 이산가족 상봉에서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북측 안내원들이 남측 방문단에게 환영의 박수를 치고 있다./황광모/북한/통일/2004.3.29 (금강산=

만일 남에서처럼 헤어 디자인, 화장, 성형, 의상, 내의류 등이 발달했더라면, 그리고 다이어트니, 에어로빅이니, 보디 메이킹이니, 워킹이니, 나아가 발성법이니, 그런 데까지 더 신경을 썼더라면, 북측이 백전백승이겠다.

게다가 이제는 북한방송의 그 하이 톤의 웅변조, 연설조의 목소리도 조금은 다듬어진 듯해 대화도 다소곳하고 태도도 유연해진 것 같다.

다만 말씨가 아직은 조금 거친 듯하고, 주체사상의 신봉자답게 순우리말만 고집하는 게 생경하게 들리지만, 그 사람들 주장이 틀리지만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누군가가 지적한 대로 우리는 말의 절반 이상을 외래어를 쓰고 있으니 말씨의 차이는 아주 크게 느껴진다. 또 보통의 일상대화는 부드럽게도 들리지만, 수령과 지도자 동지의 이야기만 나오면 갑자기 톤이 높아지는 것이어서 그 역시 어색하게 들렸다.

단어의 선택에서도 일상용어는 최대한으로 순우리말을 쓰지만, 수령과 지도자 동지에 관한 용어는 어쩌면 어려운 한자어만 골라 쓰기로 했는지, '천출장군'(天出將軍)이라든가, '결사옹위'(決死擁衛)라든가, '선군정치'(先軍政治)라든가, '현지지도'(現地指導)라든가, 어려운 말을 씀으로써 의미를 흐리게 하고 멋지게 보이려는 게 아닌지 의심을 갖게 됐다.

그러나저러나 한 접대원 동무는 내가 찍어준 자신의 예쁜 사진을 보고, "곱네요"라며 얼굴을 붉혔다.

"곱다"는 말은 우리가 잘 안 쓰는 아름다운 우리말이다.

◇ 장마당 경제 체험

평양 체재 닷새째인 마지막 날 오전은 김일성대학을 돌아봤다. 이곳의 모든 스케줄은 수시로 변하며, 항상 유동적이다. 그래서 공식적으로 사전에 확정 발표되거나, 우리처럼 A4용지에 출력해서 나누어 주는 법이 없다.

하여튼 유명한 대학을 갑자기 보여 주겠다니 미상불 고맙고, 반갑다.

그런데 이게 또 그 고질적인 선전·선동이랄까.

두 시간을 보여준 것이 김정일의 학창 시절, 그가 얼마나 공부 열심히 하고, 희생적이고, 지도력 있고, 탁월한 혜안을 가졌었는지에 관한 자료들을 '공부'(?)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


북 김일성대, 자연박물관·첨단기술개발원 준공


(평양 조선중앙통신= 김일성종합대학 자연박물관과 첨단기술개발원 준공식이 28일에 열렸다고 30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2019.11.30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No Redistribution]

참다못해 누군가가 부탁처럼 말을 붙여 보았다.

그 유명한 대학도서관을 좀 볼 수 없겠냐고. 그랬더니 시간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버스로 대학 구내를 한 바퀴 돌아보며 보여주는 것으로 대신하자고 오히려 우리에게 부탁처럼 말을 하는 것이었다.

호텔로 돌아와 마지막 점심을 뷔페식으로 잘 먹고 공항으로 향하는 길에 약 두어 시간 국영백화점에서 쇼핑할 시간이 주어졌다. 사고 싶은 물건은 별로 없었지만, 거기다 사람들을 풀어놓고 긴 시간을 보내라고 하니, 이것저것을 들여다보게 되고, 또 그나마 서울 사람들 생각이 나서 물건을 고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성과급(인센티브)제도의 시행 때문인지 여성 복무원들은 물건 하나를 더 팔려고 아주 열심들이다.

게다가 매상을 올리도록 훈련을 받은 듯 몇 가지 속임수를 동원하기도 한다. 그 첫째가 '잔돈이 없다'는 수법(?)인데 여기 통용되는 유로(또는 달러)를 물건 산 액수에 꼭 맞추어 내지 않으면 으레 하는 이야기다.

잔돈이 없으니 물건으로 하나 더 가져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둘째는, 어떤 물건 하나를 달라면 둘을 권하고, 열을 달라면 열둘을 권하는 수법인데, 여기엔 서투른 애교와 상냥한 미소가 곁들이기 마련이어서 어지간한 사람은 남녀를 불문하고 대개 넘어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런 유치한 속임수들은 수법이 다양하지 못해서 금방 들통이 나는데 오히려 나에게는 그것이 귀엽게 보이기도 했다.

북한의 경제는 한참 동안 엉망이었다고 잘 알려져 왔다. 지난 2002년 7월 1일의 '7.1 경제관리개선 조치'로 이어졌다.

한마디로 배급제도의 폐지와 시장경제의 허용, 그리고 각 분야의 성과급제도 도입이었다. 도대체 사회주의 국가에서 배급제를 폐지한다는 것은, 말이 그렇지 엄청난 '개혁 조치'였을 것이다.

쌀 배급이 끊어지면 사람들에게 어쩌라는 말인가? 이것은 각자가 알아서 해결하라는 뜻이고, 나아가 그것은 집 앞의 쪽 마당에 '남새'(채소)라도 심어 길어다가 '시장'에 내다 팔아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쌀이건 풀뿌리건 사 먹으라는 이야기이니, 천지개벽도 보통 개벽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방문 당시 그런 조치가 난지 2년 정도 흐르다 보니 조금씩 그게 자리가 잡혀 나가는지, 길거리에는 이동 매대에서 남새나 '얼음보숭이'(아이스크림)나 과실을 팔고, 식당, 미용, 이발 등 서비스업도 눈에 띈다.

상점에 진열된 술의 종류가 많고 다양한 가격인 걸 보면, 이게 모두 관광객용만은 아닌 듯도 하다.

'손전화'(핸드폰)는 당시 한대에 2천불이나 할 정도로 비싸지만 2004년 방문 당시에만 평양 시내에 약 2천여대가 있다고 한다.


北 10월 평양.라선서 휴대폰 개통 (2002년)


북한이 오는 10월부터 평양과 라선 등 2개 도시에서 193-0001로 시작되는 번호로 이동전화 서비스를 개시하기에 앞서 북한 안내원이 시험통화(좌)를 하고 있다. 오른쪽은 북한의 각종 휴대전화.https://북한/ 2002.5.24

'색 텔레비'(컬러TV)는 500불, 컴퓨터는 1천불, 비싸지만 아무나 살 수가 있게 됐다니, 돈의 흐름이 좀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심지어는 일반 인민들도 국가가 제공한 살림집을 작은 규모로 옮기고 그 차액으로 자본을 삼아 무슨 장사라도 하겠다고 나서며, 정부도 그런 일을 묵시적으로 인정하고 있다니, 이렇다면 공화국의 나갈 길은 절대로 뒤로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선 셈이다.

◇ 콩대를 태워 콩을 삶다?

오후 다섯 시, 다시 평양 순안(順安)공항.

서울로 우리를 데려갈 대한항공 816편(올 때는 815였다) B767기가 썰렁하니 드넓은 공항에 혼자 서 있다.

나는 이것이 우리만을 위한 특별기가 아니고, 부산이나 광주, 대구처럼 매일 여러 편씩 자유롭게 승객을 실어 나르는 정기편이 되기에는 얼마나 시간이 더 걸려야 할까를 생각하며 마음이 아득해졌다.


평양 순안공항 현대식 터미널 개관


북한의 고려항공이 운영자로 있는 인터넷사이트 비공식 페이스북에 소개된 평양 순안 국제공항 청사. 고려항공은 페이스북을 통해 지난달 공항청사에 수하물, 출입국 관리 등 현대식 시설을 갖춘 새로운 터미널이 개관됐다고 전했다. 2011. 8. 23 <<북한부기사참조>>

순안공항, 그 이름이 얼마나 순하고 편안한가.

그런데 왜 현실은 그렇지 못하단 말인가.

콩대를 태워 콩을 삶으니

콩이 가마솥 속에서 우는구나

본래는 같은 뿌리에서 나왔는데

서로 지짐은 어찌 이리 각박한가?

단재 신채호가 우리 역사를 읽다가 떠 올렸다는 가슴 아픈 시의 한 대목이다.(계속)

김원 건축환경연구소 광장 대표.

▲독립기념관·코엑스·태백산맥기념관·국립국악당·통일연수원·남양주종합촬영소 등 설계. ▲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삼성문화재단 이사, 서울환경영화제 조직위원장 등 역임. ▲ 한국인권재단 후원회장 역임. ▲ 서울생태문화포럼 공동대표

* 자세한 내용은 김원 건축가의 저서 '행복을 그리는 건축가', '꿈을 그리는 건축가', '못다 그린 건축가'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정리 : 이세영·김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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