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 자료사진]
이보배 권희원 황윤기 기자 = '성남FC 후원금 의혹 사건' 재판부가 직무대리 발령 자체를 문제 삼아 공판에 출석한 검사를 퇴정시키는 일이 벌어지면서 검찰 내부에서 당혹감을 넘어 황당하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재판부는 직무대리 발령이 법적 근거가 없는 검찰총장의 자의적 인사라며 퇴정을 명령했지만, 검찰은 엄연히 존재하는 법 규정을 외면한 채 전국 검찰청에 대한 검찰총장의 지휘·감독 권한까지 부정한 결정이라는 입장이다.
이번 재판부의 결정대로라면 검찰이 '김건희 여사 공천 개입 의혹'과 관련한 명태균 수사팀에 추가 수사 인력을 파견한 것 또한 위법하다는 것이냐는 불만의 목소리까지 나온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11일 수원지법 성남지원 형사1부(허용구 부장판사)는 부산지검 정모 검사가 '1일 직무대리' 형식으로 수원지검 성남지청에 파견돼 공판에 참석한 것을 문제 삼으며 그에게 퇴정을 명했다.
대검찰청이 성남FC 후원금 사건의 수사 단계부터 참여한 정 검사에게 공소 유지 업무를 맡기기 위해 서울중앙지검과 성남지청에 각각 직무대리 형태로 발령 낸 근거가 검찰청법 등 법에 규정돼 있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법무부령인 검찰근무규칙 4조 1항에 '검찰청의 장은 직무 수행상 필요하고 또한 부득이한 경우에 한해 관할에 속하는 검찰청의 검사 상호 간에 직무를 대리하게 할 수 있다'고 규정하지만, 검찰총장이 별개의 검찰청 검사 상호 간 직무대리 발령을 내릴 수 있다고 해석할 수는 없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다.
출근하는 심우정 검찰총장
서대연 기자 = 심우정 검찰총장이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2024.10.23
검찰은 이 같은 재판부 판단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검찰청법 제7조의2(검사 직무의 위임·이전 및 승계) 조항에 직무대리 발령의 명백한 법적 근거가 마련돼 있고, 이는 대법원장이 판사들에게 직무를 대리하게 할 수 있도록 규정한 법원조직법 6조와도 사실상 동일하다는 것이다.
또 검찰청법 제12조 제2항이 '검찰총장은 대검찰청의 사무를 맡아 처리하고 검찰사무를 총괄하며 검찰청의 공무원을 지휘·감독한다'고 규정하는 만큼, 검찰총장의 직무대리 명령 권한 관할은 대검에 한정되지 않고 '전국 검찰청'에 적용된다고 보는 것이 맞는다는 것이다.
재판부 논리대로면 총장은 대검 내에서만, 고검장은 고검 내에서만, 지검장은 지검 내에서만 검사들의 직무대리 발령을 할 수 있게 되는데, 이 경우 대구지검장이 산하 지청인 안동지청 검사를 대구지검에 직무대리 발령하는 것조차 불가능해지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 검찰 입장이다.
당장 지난주 검찰총장이 명태균 의혹 수사 투입을 위해 부산지검 등에 소속된 검사 4명을 창원지검으로 직무대리 형태로 발령 냈는데, 이 또한 위법한 것으로 봐야 하느냐는 비판도 나온다.
재판부는 사안이 복잡하고 증거의 양이 방대하다는 이유가 직무대리 발령 조건인 '직무 수행상 필요하고 부득이한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지만, 검찰 내에서는 사건 결과에 책임을 지는 총장, 고검장, 지검장이 판단할 문제에 왜 재판부가 참견하느냐는 날 선 반응도 나온다.
검찰이 이처럼 당혹스러워하는 배경에는 그간 검사 직무대리 발령이 이처럼 문제가 된 적이 없었다는 점도 있다.
검찰은 이전에도 세간의 이목이 쏠리는 주요 사건의 공소 유지에는 사건을 가장 잘 아는 수사 검사를 법령상 근거에 따라 직무대리 명령을 통해 참여시켜 왔다.
실제로 올해 8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김동현 부장판사)가 심리 중인 이재명 대표의 대장동 개발비리 사건 공판에서도 이 대표 측 변호인이 성남지원 사례를 거론하며 직무대리 검사 공판 참여의 위법성을 다투려 했지만, 재판부는 현 단계에서 절차적으로 문제 삼을 일이 아니라는 입장을 내놨다.
'최순실 국정농단' 관련 사건 재판에서도 특별검사팀에 파견된 검사의 공소 유지 활동의 적법성이 쟁점이 된 바 있는데, 재판부는 잇따라 문제가 없다는 판단을 내놓기도 했다.
이처럼 오랜 기간 적법하다고 인정받으며 운영돼 온 재판 수행 방식에 대해 유독 성남지원 재판부가 13페이지에 이르는 명령 결정문까지 작성하며 이례적으로 공판 검사를 퇴정시킨 것에 검찰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분위기다.
법원 로고
[촬영 이율립]
검찰은 예견할 수 없는 이 같은 제동 사례가 반복될 경우 유죄 입증이 점점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1∼2년 단위로 전국 검찰청에 순환 배치되는 검찰의 인사 시스템을 고려하면, 장기간 첨예한 법률적 다툼이 이뤄지는 대형 사건의 재판에 직무대리 발령 없이 수사 검사를 참여시키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검찰이 지난 11일 법정에서 구두로 즉각 '법관 기피 신청'을 한 것 또한 이 같은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신청하는 법관 기피 사건에서는 단순한 '공정한 재판의 우려'가 아니라 검찰청법 해석을 둘러싼 법리 적용이 쟁점이 될 가능성이 있다.
이에 기피 사건 재판부의 판단에 따라 검찰의 전반적인 공소 유지 방식에도 큰 영향이 생길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대법원 관계자는 "재판부에서 판단할 사항으로 드릴 말씀이 없다"며 말을 아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