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31일 유럽의회에서 영국 국기를 내리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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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김지연 특파원 = 영국이 31일(현지시간)로 유럽연합(EU)에서 공식 탈퇴하는 '브렉시트' 5주년을 맞았다.
영국은 2016년 6월 23일 국민투표에서 찬성 51.9%로 EU 탈퇴를 결정했고, 험난한 협상 과정을 거쳐 2020년 1월 31일 오후 11시(중앙유럽 표준시 2월 1일 0시)를 기점으로 EU를 떠나 11개월의 전환기에 돌입했다.
이때까지도 EU와 영국은 무역을 중심으로 한 미래관계 협정에 이르지 못했고 크리스마스이브에 가까스로 협상을 타결해 실제 브렉시트 발효는 2020년 12월 31일 오후 11시(EU 시간 2021년 1월 1일 0시) 시작됐다.
영국이 1973년 EU의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한 지 47년 만이었다.
◇ 무역 부정적 영향 평가…행정절차 복잡, 중소기업 타격 커
영국이 EU의 단일시장·관세 동맹에서 빠져나온 이후 무역은 부정적 영향을 받았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손익의 수준이나 규모에 대한 추산은 제각각이다.
BBC에 따르면 브렉시트 뒤 EU에 대한 영국의 상품 수출이 EU 잔류를 가정했을 때보다 30% 작은 수준이라는 연구 결과부터 6% 감소에 그쳤다는 보고서까지 다양하다.
광고, 경영컨설팅과 같은 서비스 수출은 오히려 증가해 지난해 8월 나온 의회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보다 2023년이 9% 많았다.
장기적으로 전체 무역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전망이 여전하다. 예산책임청(OBR)은 지난해 3월 보고서에서 영국의 대(對)EU 재화·서비스 교역 규모는 EU 잔류 시보다 장기적으로 약 15% 낮은 수준일 것으로 예상했다. 이같은 부정적 전망은 브렉시트 이전인 2016년부터도 꾸준히 제기됐었다.
브렉시트 이후 영국은 호주, 뉴질랜드와 개별로 무역 협정을 맺었고 미국, 인도와도 추진 중이지만 이같은 개별 협정의 효과는 미미한 것으로 평가된다.
업계에서는 영국과 EU가 무역 협정을 통해 수출입 상품에 대한 관세나 쿼터 등 무역장벽은 피했지만, 검역이나 서류 작업 등 행정절차가 늘고 시간이 급증했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한다.
데이비드 헤니그 유럽국제정치경제센터(ECIPE) 연구원은 "대기업은 그렇게 큰 타격이 없다. 방산업체, 대형 제약사는 여전하다"며 "하지만 중간 규모 기업은 수출에서 입지를 유지하기 위해 정말로 분투하고 있고 새로운 기업이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고 AP 통신에 말했다.
영국 런던 세인트판크라스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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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렉시트 촉발' 이민 되레 늘어…EU 밖에서 영국행 증가
이민은 브렉시트를 사실상 촉발했고 국민투표 기간 최대 화두였다. 급증한 이주민 유입에 영국에서는 역내 자유로운 이동에 반대하는 여론이 뜨거웠고 '국경 통제권을 되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브렉시트 이후 EU발 이주민 유입은 대폭 감소했다. 하지만 2021년 1월 새로 정비한 이민 체계를 도입한 이후 전체적인 이주민 유입은 오히려 늘었다.
영국 통계청(ONS)에 따르면 2023년 영국의 연간 순이민은 90만6천명으로 사상 최다를 기록했다. 브렉시트 이전인 2019년까지는 장기 이주민 중 EU 국적자가 비(非)EU 국적자보다 많았지만 2023년 말엔 비EU 비율이 85%까지 올라갔다.
현재 이민 규모가 너무 커 영국해협을 소형 보트로 건너 들어오는 불법 이민뿐 아니라 합법 이민도 제한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졌다. 이에 영국 정부는 각종 취업, 학업 비자 제한을 높이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지난 5년간 브렉시트가 이민을 막진 못한 셈이다.
◇ 영국민 '브렉시트 후회' 최고조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당시 51.9%가 찬성했는데 이후 여론조사에서 브렉시트에 대한 지지율은 계속 하락세다.
여론조사 기관 유고브의 지난 20∼21일 여론조사에 따르면 55%가 브렉시트는 '틀린 결정'이었다고 답했다. '옳은 결정'이었다는 답은 30%에 그쳤는데 이런 지지율은 브렉시트 이후 최저다.
이제까지 브렉시트가 '실패'라는 응답은 62%, '성공'이라는 답은 11%였다.
이런 흐름을 감지한 키어 스타머 총리가 이끄는 노동당 정부는 지난해 7월 총선 때부터 경제와 안보 측면에서 EU와 협력 관계를 더 강화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EU 재가입은 없을 것이라고 명확히 선을 그었다. 노동당 정부는 출범 이후 유럽에 대한 러시아의 위협이나 이민에 대한 대응, 교역 활성화 등에 집중했을 뿐 '자유로운 이동'과 관련해서는 복원할 뜻이 없다는 점이 명확해졌다.
여론조사에서도 EU 재가입이나 단일 시장·관세 동맹 재가입 없이 EU와 더 친밀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응답이 64%로, EU 재가입 지지(55%)보다 높았다.
2020년 1월 31일 다우닝가 10번지의 카운트다운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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