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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honey] 성산 오대산에 핀 '문화의 꽃' 월정사
기사 작성일 : 2024-11-20 09:01:16

(평창= 현경숙 기자 = 산악 지형인 한반도에는 명산이 즐비하다. 하지만 산 전체가 성산(聖山)인 곳은 오대산(해발 1,563m)이 유일하다.



오대산 적멸보궁 가는 길[사진/백승렬 기자]

◇ 산 전체가 성지인 오대산

백두대간의 중심이며, 강원도 평창군·홍천군·강릉시에 걸쳐 있고, 국립공원인 오대산은 불교에서 산 전체를 성스러운 장소로 여긴다.

이는 무엇보다 산 중심부의 높은 봉우리인 중대에 자리 잡은 적멸보궁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적멸보궁이란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곳이다.

'적멸'은 '불이 꺼진 상태'이다. 욕망과 번뇌의 불꽃이 소멸해 고요해진 경지를 일컫는다.

신라 시대 자장율사(590∼658)가 봉안한 석가의 정수리뼈 사리에 참배하기 위해 예부터 오늘날까지 수많은 불자와 관광객이 적멸보궁을 찾고 있다.

석가모니를 상징하는 적멸보궁은 조촐했다. 나지막한 봉분과 조촐한 비석, 작은 법당이 전부이다. 적멸보궁에 담긴 가르침의 현대적 의미는 무엇일까. 열린 마음과 이타심이라고 중대 사자암의 주지 해여 스님은 강조했다.



단풍 들기 시작한 중대사자암[사진/백승렬 기자]

오대산이 성소가 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더 있다. 오대산은 물, 불, 바람의 재앙을 막을 수 있는 길지, 명당이라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조선 시대 실록, 왕실 족보, 의궤 등 국가기록물을 보관하던 장소였다.

오대산 사고에 보관 중이던 역사서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약탈당했다가 화재 등으로 대부분 소실됐으나 2006년 일부가 한국으로 환수됐다.

되찾은 실록, 의궤 등은 사고 관리 사찰이었던 월정사의 성보 박물관 옆에 새로 건립된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에 내년 전시될 예정이다. 빼앗겼던 유산이 약 110년 만에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셈이다.

오대산은 또 국토의 가장 큰 젖줄 한강의 시원지로 믿어지던 곳이다.

한민족은 예부터 오대산 서대 아래 있는 수정암 옆 우통수를 한강의 발원지라고 생각했다.

우통수는 오대산 계곡인 오대천으로 흘러 월정사 입구에 있는 금강연으로 모여든다.

우통수는 빛깔과 맛이 여느 물과 다르다고 한다.



월정사 입구 한강시원지 체험관에 재현된 우통수[사진/백승렬 기자]

세종실록지리지는 "한강 물이 비록 여러 곳의 물을 받아 흐르나 우통수가 중심이 되어 빛과 맛이 변하지 아니해서 중국의 양자강과 같으므로 한(漢)이라는 이름이 이로 인하여 되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국립지리원은 1987년 강원도 태백시에 있는 검룡소를 한강의 최장 발원지로 공식 확인했다. 한강 하구에서 가장 먼 발원지는 아닌 것으로 확인됐지만 오대산은 오랫동안 한강의 발원지로서 신성시됐다.

석가모니 진신사리 봉안, 왕조의 최고 기록을 보관했던 요처, 한강의 정신적 시원지는 종교적 측면에서뿐 아니라 역사, 문화 차원에서도 오대산을 성산의 반열에 올려놓는다.

'오대'(五臺)라는 이름은 크기가 비슷한 다섯 봉우리가 연꽃처럼 펼쳐졌다는 데서 유래했다.

중간에 중대가 있고, 사방으로 동대, 서대, 남대, 북대가 있다. 적멸보궁이 있는 중대 사자암을 감싸듯 동·서·남·북 대에 관음암·수정암·지장암·미륵암이 차례로 자리 잡고 있다.



월정사 남대 지장암 운해[사진/백승렬 기자]

오대에 오르면 뾰족뾰족하거나 날카롭지 않아, 중후하고 유덕해 보이는 오대산의 능선이 한눈에 조망된다. 특히 상왕봉 중턱에 있는 북대 미륵암에는 적멸보궁 방향으로 참배할 수 있는 나옹대가 있다.

고려 말의 명승으로, 공민왕의 왕사였던 나옹선사는 중국 원나라에 유학하고 귀국한 뒤 북대에 머물며 수행했다.

오대를 하루에 모두 방문하기는 쉽지 않지만, 암자 가까이 차를 타고 갈 수도 있어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탐방한다면 오대산의 참모습을 느낄 수 있다.

오대산의 최고봉은 비로봉이다. 적멸보궁에서 1.5㎞ 정도 더 올라가면 닿을 수 있다.

상왕봉, 두로봉, 동대산, 노인봉 등도 주요 봉우리이다.

등산객들은 상원사-적멸보궁-비로봉 코스를 즐겨 찾지만, 상원사-비로봉-상왕봉-북대사-상원사 코스, 동피골-동대산 코스, 소금강-노인봉-진고개 코스도 사랑받는다.



오대산 사고(복원)[사진/백승렬 기자]

◇ 불교 대중화·생활화의 중심…월정사

오대산은 월정사, 상원사 등 천년 고찰을 품고 있다. '마음의 달'이 아름다운 절인 월정사는 당나라에서 돌아온 자장율사가 오대산 적멸보궁에 석가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643년 창건한 절이다.

긴 역사와 전통의 깊이만큼이나 문화재의 품격이 높다. 월정사 팔각구층석탑과 석조보살좌상, 상원사의 동종·중창권선문·문수동자좌상이 국보이다.



석조보살좌상[사진/백승렬 기자]

고려 초에 건축된 팔각구층석탑은 청동으로 만든 풍경과 금동으로 된 상륜부의 장엄이 아름답다. 역시 고려 시대 조각된 석조보살좌상은 만면에 띠고 있는 복스러운 미소가 잔잔한 감동을 안긴다.

월정사 말사인 상원사의 동종은 신라 성덕왕 24년(725)에 만들어진 것으로, 지금까지 확인된 한국의 종 가운데 가장 오래됐다.

상원사는 세조와 인연이 깊다.

피부병을 앓던 세조는 상원사 앞 계곡에서 목욕하던 중 문수동자를 친견하고 나았다고 한다.

세조가 목욕한 자리에는 그가 옷을 벗어 걸어놓았던 관대걸이가 있다.

문수동자좌상에서 나온 복장유물 중에는 세조의 것으로 추정되는 명주 적삼이 있다. 이 적삼에는 피고름 자국으로 보이는 오염이 있다.

상원사 중창을 발원하는 글인 권선문에는 세조의 글과 수결이 있다. 세조의 적삼과 회장저고리는 월정사 성보박물관에 보관, 전시되고 있다.

월정사에는 찬란했던 과거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에도 불교 대중화와 생활화, 불교문화 확산의 중심에 서 있는 월정사는 돋보인다.

월정사는 지난 2004년 불교문화 축제를 시작하고 출가학교를 열었다. 축제와 학교는 올해 모두 20주년을 맞았다.

'오대산불교문화대축전'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축제는 애초에 한국의 불교문화를 널리 알리고 총체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마련됐다.



명상마을 구절초[사진/백승렬 기자]

지금은 행사 명칭이 오대산문화축전으로 바뀌었다. '불교'라는 단어를 명칭에서 과감하게 삭제한 것.

오대산 전통문화축제, 생태문화축제, 다양한 계층이 참여하는 체험 중심 축제, 지역문화축제 등으로 축제의 의미를 불교 밖으로 확장하기 위해서다.

올해 축제는 사리 이운식, 기원탑돌이, 세조 어가 행렬, 개막공연, 전국 학생 백일장 및 사생대회, 지구 시민 포럼, 에코 북 콘서트 등으로 진행됐다.

스님이 되기 전의 행자 생활을 한 달 동안 체험하는 출가학교는 초기부터 출가 열풍을 불러일으키며 새로운 출가문화를 형성시켰다.

개교 이래 지금까지 배출된 졸업생은 3천여 명. 외국인 특별 출가 학교를 운영하기도 한다.

출가학교는 경전을 배우는 불교대학이나 참선 공부를 하는 시민 선방이 아니다. 사찰 수련회나 템플스테이(사찰 체험)와는 더더구나 격이 다르다.

적멸보궁 삼보일배, 삼천배, 산행 등 힘든 프로그램이 많아 중도에 포기하는 참여자도 있다.

출가 체험은 예비 출가자에게는 미리 불교를 체계적으로 이해할 기회를, 일반인에게는 자기 성찰을 통한 맑고 건강한 인격체 형성의 계기를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다.

남성은 의무적으로, 여성은 희망자만 삭발한다. 15년 전 출가학교에 입학했다가 정식 출가한 월엄 스님(월정사 출가학교 학감)은 출가학교의 삭발이 예상 밖의 강렬한 체험이었다고 회고했다.

번뇌를 내려놓고 비움의 미덕을 배우는 템플스테이는 월정사에서 상시로 행해진다.



명상마을 숙소[사진/백승렬 기자]

그러나 템플스테이와는 또 다르게 자연 속에서 명상하며, 쉴 수 있는 곳으로 주목받는 곳이 오대산 자연명상마을이다.

숲에서 쉬고, 자연 밥상을 만나고, 느리게 노는 공간이다.

소설 '태백산맥' '아리랑'의 저자로, 한국 문학의 거장인 조정래 작가가 명예촌장으로 있는 이 마을에 숙박하면 요가, 명상, 간화선 수행, 명찰명상순례 등의 프로그램에 무료로 참여할 수 있다.

마을의 모든 숙소에는 디지털 디톡스를 위해 TV, 인터넷, 냉장고가 없다. 대신 편백 나무 향이 은은한 개별 명상 공간이 마련돼 있다.

구절초와 수국이 곱게 어우러지고 단풍이 물들기 시작한 명상마을을 붓다의 정원, 깨달음의 정원, 지혜의 정원, 아리야 숲, 비밀의 정원, 바람의 빛깔 길 등 평화롭고 고요한 숲이 감싸고 있었다.

◇ 선재길과 전나무 숲

오대산과 월정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가 전나무 숲과 선재길이다.

천년의 숲으로 불리는 월정사 전나무 숲은 광릉 국립수목원 전나무 숲, 변산반도 국립공원 내소사 전나무 숲과 더불어 3대 전나무 숲으로 꼽힌다.



오대천 금강연[사진/백승렬 기자]

아름드리 전나무 1천700여 그루가 늘어서 있다. 평균 83년, 최고 300년의 수령을 자랑한다.

오대산 전나무 숲은 사람이 가장 편안하게 느끼는 해발 700m 고도에 자리 잡고 있고, 음이온을 발생시키는 오대천이 흐르며, 원적외선을 함유한 황톳길이어서 맨발로 걸을 수 있는 특징을 갖고 있다.

월정사 일주문에서 금강연 위에 걸쳐진 금강교까지 1.9㎞ 구간에 전나무 숲 탐방로가 조성돼 있다.

'마음 다함 수행은 달리기를 멈추고, 내가 그동안 찾았던 모든 것이 이미 여기에 존재함을 알게 해준다' '크게 호흡하고 숲의 친절함을 느껴보라. 마음이 따뜻해진다' …. 숲속 곳곳에 걸린 경구가 누군가에게는 큰 힘이 될 것 같다.

선재길은 월정사에서 상원사에 이르는 숲길로 1천500여 년의 숨소리와 발길이 만들어낸 명품 길이다.

예부터 월정사에서 상원사로 오가던 길을 정비한 산책로이다. '선재'는 불교 경전인 '화엄경'에 나오는 구도자이다.

깨달음을 찾는 수행자를 상징한다. 자연명상 마을에서 상원사까지 선재길은 약 11㎞이며, 한가로이 거닐면 왕복 5시간 정도 걸린다.



잣 먹는 다람쥐[사진/백승렬 기자]

월정사 템플스테이 참여자들이 선재길에 아침 포행을 나왔다가 고소한 잣나무 열매를 까먹느라 여념이 없는 다람쥐를 신기하게 들여다보고 있었다.

비 내린 다음 날 걷는 선재길은 높은 가을 하늘처럼 청정했다.

※이 기사는 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4년 11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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