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모 기자 = 시중에선 '전자담배'로 팔리고 있는데 법에선 '담배'가 아니다?
최근 전자담배의 '몸통'에 해당하는 흡연 전용 기구에도 경고문구를 붙이는 내용의 법 개정안이 발의됐다는 소식에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선 "이게 담배가 아니었네"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그동안 전자담배용 연초 제품이나 니코틴 용액에만 경고문구가 표시됐다. 일반 담배 제품에 비유하면 연초 부분만 담배이고 필터는 담배가 아닌 것으로 취급된 셈이다.
이어 합성 니코틴도 '담배'에 포함해 규제하겠다는 뉴스가 나오자 '과연 담배란 무엇인가'에 대해 더욱 답하기 힘든 세상이 됐다.
이는 담배의 형태가 갈수록 '진화'하고 있으나 이를 규율하는 법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개별법 간에도 담배에 대한 정의가 달라 혼란을 가중하고 있다.
현행 법령 기준으로 어디까지가 담배이고, 어디까지가 아직 담배가 아닐까.
액상형 전자담배 자동판매기
[ 자료사진]
◇ 과거 담배사업법에선 '연초의 잎으로 만든 것'이 담배
현재 담배 관련 법으로는 '담배사업법', '국민건강증진법', '지방세법' 등이 있다.
이중 담배사업법이 담배에 대한 표준 정의를 내리고 있어 담배 관련 기본법이라고 할 수 있다. 담배사업법은 또한 담배의 제조·판매·수입 등 담배 산업을 규율하고, 경고문구 표시, 성분 표시, 오도 문구 사용 제한 등 규제를 명시하고 있다.
국민건강증진법은 담배가 국민 건강에 미치는 해악과 관련한 정책을 다루면서 담배에 국민건강증진부담금을 부과할 수 있는 규정을 두고 있다. 지방세법은 담배소비세와 지방교육세 등 담배에 세금을 부과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고 있다.
흔히 '담배'라고 했을 때 떠올리는 이미지에 부합한 담배의 정의는 2014년 1월 개정되기 이전 담배사업법에 담겨 있었다.
당시 법은 담배를 "연초의 잎을 원료의 전부 또는 일부로 해 피우거나 빨거나 씹거나 또는 냄새 맡기에 적합한 상태로 제조한 것"이라고 정의했다.
시중에서 파는 일반적인 담배를 지칭하는 궐련뿐 아니라 마는 담배, 시가, 파이프 담배, 씹는 담배 등 통상적으로 '담배'라 불리는 것들이 이 정의에 포함됐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새롭게 등장한 전자담배가 이런 법적 정의에 변화를 줬다.
◇ '궐련형 중심' 전자담배 판매량 급증…시장점유율 8배↑
한국지방세연구원과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작성한 '액상형 전자담배 세율조정 방안 연구'(2020)에 따르면 시중에 유통되는 전자담배는 2003년 중국에서 최초로 개발된 이래 '진화'를 거듭했다.
전자담배는 크게 니코틴을 제공하는 재료 부분과 이 재료를 기체로 만들어 흡입할 수 있는 전자장치로 구성됐다.
이 재료 부분이 니코틴 용액이면 '액상형 전자담배'로, 연초 또는 연초 고형물이면 '궐련형 전자담배'로 분류된다.
액상형 전자담배는 또한 사용자가 니코틴의 양을 조절할 수 있는지에 따라 개방형과 폐쇄형으로 나뉜다.
국내에 처음 선보인 전자담배 형태는 액상형 전자담배였고, 이후 궐련형이 나왔다.
특히 2014년 필립모리스의 '아이코스' 출시로 궐련형 전자담배가 상대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궐련형은 연초의 잎을 태우지 않고 고열로 쪄서 거기서 나온 니코틴 증기를 흡입하는 방식이어서 '가열 담배'라고도 불린다.
기획재정부가 집계하는 담배 판매량을 보면 액상형은 미미하고 궐련형이 대부분이다.
지난해 기준 궐련형 전자담배의 판매 비중은 16.9%였다. 2017년 2.2%에서 6년 만에 8배로 늘었다.
액상형 전자담배는 폐쇄형 제품인 '쥴'의 출시를 계기로 시장의 관심을 잠시 받았다가 보건복지부의 강력한 사용 중단 권고로 인기가 시들어졌다.
기재부는 2022년 상반기부턴 액상형 전자담배의 판매량을 별도로 집계하지 않고 있다.
궐련형 전자담배에 담은 취향
[ 자료사진]
◇ 액상형 전자담배, 2014년 1월 법상 담배로 규정
전자담배도 담배일까. 일상에서 볼 수 있는 담배 제품은 그 종류가 어떻든 '담뱃잎' 형태를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당시 출시된 전자담배는 액체 상태의 니코틴 용액을 쓰고 있어 통상적인 담배 형태가 아니었다.
전자담배의 법적 정체성이 문제시된 것은 2008년 기재부의 법령해석 요청 때였다. 기재부는 액상형 전자담배를 담배사업법상 담배로 볼 수 있냐고 법제처에 문의했고, 법제처는 그렇다고 회신했다.
니코틴 농축액이 연초의 잎에서 추출했으므로 법적 정의에 나오는 "연초의 잎을 원료의 전부 또는 일부로 해…제조한 것"에 해당하고, 전자장치로 니코틴을 흡입하는 행위가 법적 정의에서 말하는 "빨거나"와 같은 의미라고 법제처는 설명했다.
이후 전자담배는 2010년 7월에 시행된 지방세법에서 '흡연용 담배'의 한 종류로 분류됐다. 2011년 6월엔 국민건강증진법이 개정되면서 국민건강증진부담금이 부과되는 담배도 됐다.
법적 정의가 본격적으로 바뀐 것은 2014년 1월이었다. 담배사업법에서 담배의 정의가 현재와 같이 "연초의 잎을 원료의 전부 또는 일부로 하여 피우거나, 빨거나, 증기로 흡입하거나, 씹거나, 냄새 맡기에 적합한 상태로 제조한 것"으로 변경됐다. 전자담배를 염두에 두고 "증기로 흡입"한다는 내용으로 추가된 것이다.
특정 형태의 담배가 담배사업법상 담배로 분류되느냐에 따라 그 형태의 담배가 처한 상황이 크게 달라진다.
담배사업법상 담배로 규정되면 해당 법의 규제가 적용된다. 담배사업법상 담배의 포장지엔 흡연이 건강에 해롭다는 내용의 경고문구를 표시해야 한다. 또한 담배 연기에 포함된 성분과 함유량을 표시해야 하고, '라이트', '연한', '저타르' 등과 같이 담배의 위험성을 경시할 만한 오도 문구를 표시해서도 안 된다.
담배 제품을 광고할 때 그 내용과 수단에서 제한받고, 우편이나 전자거래로 판매할 수도 없다.
지방세법과 국민건강증진법이 별도 추가 조항을 두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담배사업법상 '담배'를 담배의 정의 조항으로 두고 있어 담배사업법상 담배로 분류되면 자동으로 각종 세금과 부담금의 부과 대상이 된다.
단, 전자담배의 경우 담배사업법상 정의가 변경되기 전에 이미 지방세법과 국민건강증진법에서 담배로 분류됐다.
전자담배도 경고그림 교체
[ 자료사진]
◇ 연초 줄기·뿌리 추출 니코틴은 '담배' 아냐
새로운 담배의 법적 정의도 완벽하진 않았다. 우선 "연초의 잎을 원료의 전부 또는 일부로"라는 부분이 문제가 됐다. 연초의 잎이 아닌 줄기나 뿌리에서 추출한 것으로 니코틴을 만든다면 담배가 아니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실제 기재부는 2016년 9월에 '연초의 줄기나 뿌리에서 추출한 니코틴은 담배사업법상 담배가 아니다'라는 판단을 내렸고, 이후 연초의 줄기·뿌리에서 추출한 것으로 '알려진' 니코틴 용액이 대거 국내로 수입됐다.
감사원이 2019년 전자담배 니코틴 용액의 수입 및 관리 실태를 감사한 결과에 따르면 2016년까지는 잎에서 추출한 니코틴 용액의 수입량이 압도적으로 많았다가 기재부의 이런 민원 회신 이후인 2017∼2018년엔 줄기·뿌리에서 추출한 니코틴 용액이 전체 니코틴 용액 수입량의 97.6%를 차지하게 됐다.
줄기·뿌리에서 추출한 니코틴은 담배에 붙는 각종 세금과 부담금이 부과되지 않은 탓에 이를 재료로 쓰는 액상형 전자담배는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할 수밖에 없다.
2019년 기준 액상형 전자담배에 붙는 세금과 부담금의 비중이 판매가격의 37.2%에 달했다. 줄기·뿌리 추출 니코틴 용액을 사용하는 액상형 전자담배는 이만큼 가격을 낮출 여지가 있는 셈이다.
게다가 정말로 줄기·뿌리에서 추출한 니코틴인지 당시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르면 관세청이 해당 용액이 줄기·뿌리에서 추출한 니코틴 용액인지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감사원이 당시 특정 업체에 문의해보니 니코틴 함량이 연초 잎은 0.5∼5.0%지만 줄기는 0.06∼1.15%, 뿌리는 0.08∼0.75%에 불과했고(줄기·뿌리에서 니코틴을 추출하기엔 경제성이 낮다는 의미), 줄기·뿌리에서 추출한 니코틴만을 사용해 전자담배 용액을 제조하는 회사는 국내외 모두에서 확인되지 않았다고 답변했다.
당시엔 잎 추출 니코틴 용액을 탈세할 목적으로 줄기·뿌리 추출 니코틴이라고 신고해 수입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정부는 이에 담배의 정의를 확대하는 법 개정을 추진했으나 국회 논의 과정에서 담배사업법 개정은 무산되고 지방세법만 개정됐다.
현재까지 이어온 지방세법에선 "연초의 잎이 아닌 다른 부분을 원료의 전부 또는 일부로" 해 만든 것도 담배로 정의됐다.
이에 따라 줄기·뿌리 추출 니코틴 용액을 쓰는 액상형 전자담배는 각종 세금이 부과되고 이 지방세법의 담배 정의 규정을 따르는 국민건강증진법상의 부담금도 아울러 부과된다.
단, 담배사업법상 담배로 분류되지 않아 경고문구 표시나 광고 제한, 온라인 판매 제한 등의 담배사업법상 규제를 받지 않는다.
또한 담배사업법상 담배의 정의 규정을 따르는 '청소년 보호법'의 규제도 적용되지 않는다. 이런 부류의 담배는 청소년 유해 약물로 규정되지 않아 이를 청소년에게 판매하더라도 처벌받지 않는다.
합성니코틴 액상형 전자담배 진열대
[ 자료사진]
◇ 합성 니코틴 사용 전자담배는 '담배' 아냐
지방세법 개정으로 줄기·뿌리 추출 니코틴 용액에도 세금이 붙자 이번엔 합성 니코틴이 등장했다.
합성 니코틴은 인공적으로 화학물질을 합성해 만든 니코틴을 말한다. 연초에서 추출된 것이 아니므로 담배사업법이 적용될 소지가 없다.
박성훈 국민의힘 의원이 관세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합성 니코틴의 수입량은 2021년 98t에서 2022년 121t, 지난해 216t으로 갈수록 급증했다.
올해 1∼9월 수입량은 316t으로, 이미 지난 한 해 수입량을 넘어섰다.
그동안 국회에서 합성 니코틴도 담배에 포함하려는 입법 움직임이 있었지만, 이견이 있어 개정에 이르지 못했다.
게다가 유해성을 둘러싼 논란도 있었다. 업계에선 합성 니코틴 원액이 정제 과정을 거친 '순수 니코틴'으로 천연니코틴 원액보다 덜 해롭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최근 복지부의 연구용역 최종 결과에 따르면 합성 니코틴 원액도 연초에서 추출한 천연니코틴 원액과 마찬가지로 유해 물질을 함유하고 있었다.
연구보고서는 합성 니코틴의 유해 물질 잔류량이 연초니코틴 원액의 유해 물질 잔류량보다 적지 않은 점을 고려할 때 합성 니코틴도 동일하게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이런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합성 니코틴도 담배로 규제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이번에 담배사업법이 개정될지 주목된다.
◇ 전자담배 흡입장치도 담배 아냐…청소년 유해 물건 지정
결론적으로 현재로선 연초의 줄기·뿌리에서 추출한 천연니코틴이나 합성 니코틴을 사용하는 액상형 전자담배는 담배사업법상 담배가 아니다.
인터넷에서 액상형 전자담배를 구매했다면 담배사업법상 담배가 아닌 제품이다. 담배사업법상 담배는 온라인에서 살 수 없다.
줄기·뿌리 추출 니코틴을 쓰는 액상형 전자담배는 지방세법상 담배로 규정돼 각종 세금과 부담금이 부과된다. 인터넷에서 팔리더라도 합성 니코틴 제품보다는 가격이 비싸다는 의미다.
아울러 액상형이든 궐련형이든 전자담배의 흡입장치는 '담배'가 아니다.
대법원의 2019년 9월 판결에 따르면 흡입장치는 담배사업법이 규정한 담배의 구성요소가 아닌 흡입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단, 이 흡입용 전자장치가 청소년 유해 물건으로 고시돼 있어 청소년들에게 판매·대여 등이 금지됐다.
전자담배 즐기는 한 시민
[ 자료사진]
<< 팩트체크부는 팩트체크 소재에 대한 독자들의 제안을 받고 있습니다. 제안해 주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