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기자회견장에서 악수하는 닛산과 혼다 사장
(AFP= 우치다 마코토 닛산 사장과 마베 도시히로 혼다 사장이 지난 8월 1일 도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악수하는 모습. 2024.8.1. [DB화 및 재배포 금지]
차병섭 기자 = 일본 2·3위 자동차 업체인 혼다와 닛산이 합병을 추진하고 나선 가운데, 중국 자동차의 질주가 독일과 일본 등이 장악해온 글로벌 자동차 업계의 판도를 재편하고 있다.
독일, 일본, 한국 자동차 업체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관세 공약이라는 악재에도 직면한 상태다.
◇ 적과도 손잡는다…'생존경쟁' 내몰린 자동차 업계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8일(현지시간) 닛산과 혼다의 합병 추진을 비롯한 최근 글로벌 자동차 업계 움직임의 배경에는 '차이나 쇼크'가 있다고 진단했다.
경영난에 직면한 닛산은 혼다와의 합병 추진을 통해 재기를 모색 중이며, 자본 제휴와 지주회사 설립 등의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닛산은 이미 직원 9천명 감원 등 구조조정안을 발표한 상태다.
앞서 미국 제너럴모터스(GM)는 이달 4일 중국 사업 구조조정 및 그에 따른 합작투자사 자산 상각 처리로 총 50억 달러(약 7조원) 이상의 회계상 비용이 발생할 전망이라고 공시했다.
합작법인은 2018년까지만 해도 차량 판매량이 한해 200만대에 달했으나 미중 무역 갈등이 심화하면서 매출에 타격을 입었고, 올해 들어서는 11월까지 차량 판매량이 37만대로 급감한 상태다.
독일 폭스바겐은 사상 처음으로 자국 내 공장 폐쇄 및 감원을 고려하고 있으며, 폭스바겐 주요 주주인 포르쉐-피에히 가문도 배당금 축소 우려 속에 이러한 공장 폐쇄를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 포드는 지난달 영국·독일 공장에서 4천명을 해고한다고 발표했고 세계 4위 완성차 업체 스텔란티스는 최근 실적 부진 속에 최고경영자(CEO)를 해임하기도 했다.
◇ 중국차 대공습…"기술혁신 없으면 몸집 키우기론 역부족"
WSJ은 주요 자동차 업체들의 고전은 중국 시장 변화와 관련 있다고 분석했다.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의 신차 판매 50% 이상은 전기차 또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량이고, 중국에서 팔리는 신차 5대 중 3대는 자국 브랜드로 사상 최고 수준이다. 중국의 승용차 수출량도 2020∼2023년 5배가 됐다.
일본과 서방 업체들은 과거 별다른 어려움 없이 중국 시장을 지배해왔지만 후발 주자인 중국 업체들의 거센 추격과 중국 시장이 전기차 중심으로 전환되면서 생존 위기로까지 내몰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4년간 중국 전기차 및 배터리 산업은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이제 내수를 넘어 유럽·동남아·남미 등을 공략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혼다와 닛산의 합병 추진이 전기차 기술과 자율 주행 등에서 중국과 경쟁하기 위한 것이지만, 기술 혁신 없이 단순히 몸집만 키우는 식으로는 난국을 돌파하기 어렵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소식통은 대만 업체인 폭스콘도 전기차 사업 확장을 위해 닛산 지분 인수를 제안한 상태라고 전했다.
◇ '트럼프 관세' 현실화 땐 미국 수출도 타격
글로벌 자동차 업계는 중국 시장 경쟁 격화와 전기차 전환에 더해 트럼프 당선인의 관세 공약과 세계적인 보호무역주의 흐름, 수요 부진에도 직면한 상태다.
트럼프 당선인은 대선 기간 중국산에 60% 관세를 부과하고 모든 수입품에 10∼20%의 보편 관세를 매기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근에는 멕시코·캐나다에 25% 관세를 물리고 중국에는 기존 관세에 더해 10% 추가 관세를 매기겠다고 발표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닛산과 혼다의 합병 추진에 대해 "최선의 합병 시기는 어제였다"면서도 "차선은 오늘"이라면서 일본의 경우 정부의 주주 친화적 정책에 따라 합병을 추진하는 경향도 있다고 평가했다.
미즈호의 기쿠치 마사토시 전략가는 일본 자동차 업계가 삼중고에 직면한 상태라면서 중국과의 경쟁에 따른 중국·동남아 시장 점유율 하락, 일본 내수 부진, 미국의 관세 인상 가능성 등을 꼽았다.
그러면서 "닛산·혼다를 비롯한 일본 자동차업체들은 한 번에 많은 역풍을 대처하기 위해 합병을 논의하기로 했다"고 봤다.
FT는 "일본 자동차 업계에 가장 큰 문제는 미국 시장"이라면서 "도요타와 현대차 등 현금이 풍부한 기업들만 가격 할인 전쟁을 견딜 수 있고 닛산의 점유율은 하락하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