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화마에 불탄 동해안 산림
[촬영 양지웅]
(춘천= 이재현 기자 = 봄·여름·가을·겨울 사시사철 가릴 것 없이 심각해지는 기후 격변을 생존 문제로 인식하고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연중 재난 상황을 방불케 하는 이상 기후는 주민과 관광객 불편뿐만 아니라 농작물 수급 불안으로 물가 상승, 경기 침체 등 또 다른 재앙을 몰고 왔다.
는 강원도 내 바다와 해안, 농어촌 최일선 기후변화 현장을 점검하고, 미래 대응을 위한 실마리를 모색하는 기획 기사를 올해 9월 1일부터 12월 8일까지 격주로 8차례 송고했다.
그동안 송고된 기후 격변 시리즈를 되짚어 심각성을 일깨우고 전문가의 의견을 토대로 대안을 모색해 본다.
해안침식으로 거대한 절벽 생긴 경포해변
[촬영 유형재]
◇ '아까시꽃 피면 산불 걱정 끝' 옛말…'해수면 상승' 백사장이 사라진다
산불은 가장 큰 현재 진행형 기후 재난이다. 기후 변화의 여파로 산불은 연중화하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기온이 오르고 가뭄일수가 늘면서 산불 조심 기간은 봄과 가을이 따로 없어졌다. 사시사철 늘 산불 위험이 도사린다.
기후변화에 따른 산불위험지수를 보면 기온이 1.5도 상승 시 8.6%, 2도 상승 시 13.5% 증가하는 것으로 예측됐다.
기후변화가 무서운 이유는 기온 상승으로 산불 위험이 커지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산불로 인해 방출되는 이산화탄소(CO)가 또다시 기후변화를 가속하는 '악순환'을 일으킨다는 점이다.
지구 온난화는 동해안 백사장도 빠르게 갉아먹고 있다.
해안 침식이 심각한 곳은 해안 도로가 무너지거나 해변 인근 건물 안전까지 위협하고 있다.
2천400년 전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강릉 안인·하시동 사구는 아름다운 옛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백사장이 깎여 나가면서 흉물스럽게 변했다. 해안 침식 피해의 대표적 현주소다.
동해안 해변 중 52%가 해안 침식 심각 단계인 것으로 나타났다. 해수면 상승으로 해안 침식 속도는 더 빨라지고 더 심각한 양상으로 우리 삶을 위협하고 있다.
추석 물가에 큰 영향 끼치는 여름 배추
[촬영 이재현]
◇ 노랗게 타들어 간 고랭지 배추…'녹색 재앙' 녹조, 수생태계 교란
갈수록 더워지는 날씨는 전국의 과수 재배 지형도 점점 북쪽으로 끌어 올리고 있다. 비교적 서늘한 곳에서 잘 자라는 사과는 주산지가 강원도로 바뀔 형편이다.
하지만 2070년이며 한반도에서 사과를 거의 재배할 수 없다는 예측도 있다.
고랭지배추 최후의 보루인 강원 고랭지는 최근 기후 격변에 노랗게 타들어 갔다.
연중 16%를 차지하는 여름 배추의 90∼95%가 강릉 안반데기와 태백 매봉산 등 강원 고랭지에서 나온다.
폭염과 이상기후 탓에 재배면적이 감소하고, 들쭉날쭉한 여름 배추 작황 때문에 배춧값은 매년 추석 물가에 큰 변수로 작용한다.
이마저도 2050년이면 고랭지배추 재배 적지가 크게 줄어 2090년에는 아예 사라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매년 여름 폭염 때면 소양강 상류는 녹조에 신음하고 있다. 녹조를 발생시키는 남조류는 독성과 악취를 유발해 상수원을 오염시킨다.
이에 더해 용존산소 부족으로 물고기 등의 집단폐사가 발생해 수생태계 교란과 어족자원 고갈을 부추긴다.
독성 해파리의 습격
[촬영 유형재]
◇ 귀하신 몸 금징어·씨 마른 명태…'쏘이고 찢기고' 해파리 공포 더 심각
기후 격변에 따른 수온 상승은 동해안 어장지도도 바꿔놨다.
난류성 어종인 방어는 제주도가 아닌 강원 앞바다의 터줏대감이 됐고, 아열대성 어류인 참치까지 동해안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반면 동해안 대표 어종인 오징어는 어획량이 급감해 '금징어'가 된 지 오래다. 국민 생선 명태는 씨가 말랐다.
빠르게 더 뜨거워지는 바다 수온은 패류독소, 양식생물 질병으로 이어져 양식업에도 큰 타격을 주고 있다.
올여름 기록적인 불볕더위로 뜨거워진 바다는 노무라입깃해파리를 동해안 최북단까지 끄집어 올렸다.
해파리들은 생선을 잡기 위해 설치한 어망을 찢어 놓는가 하면 어민들의 손과 얼굴 등 피부에 직접적인 손상을 입혔다.
피서객 쏘임 사고도 속출했다. 올여름 강원 동해안 6개 시군의 피서객 해파리 쏘임은 618건으로 전년 45건보다 약 14배 증가했다.
해양 온난화가 가속화되면서 해파리 공포는 더 심각해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경고다.
이상기온은 바다뿐만 아니라 강과 하천에도 큰 과제를 안겼다. 한겨울에도 충분히 얼지 않은 얼음 탓에 겨울 축제는 취소와 연기를 반복하고 있다.
'겨울축제의 원조' 인제 빙어축제는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무산됐고, 평창 송어축제는 포근한 겨울 날씨 탓에 개최 시기를 오는 27일에서 내년 초로 1주일 미뤘다.
겨울철 눈과 얼음을 주제로 한 겨울축제가 온난화의 직격탄으로 존폐위기를 맞으면서 겨울축제에 기댔던 지자체와 주민들의 앞날은 암울하기만 하다.
'한강 최상류' 소양호 상류에 사상 첫 녹조 발생
[촬영 양지웅]
◇ "기후 격변 생존 문제로 인식해야" 전문가들 한목소리
전문가들은 정부와 시민 모두가 기후 문제를 생존의 과제로 인식하고 대비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또 기후 위기 영향평가를 통해 업종과 지역별 취약성을 수치화하는 등 대책을 마련하고, 탄소중립을 모든 정책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황선재 국립수산과학원 동해수산연구소장은 "지난 56년간 우리나라 연근해 표층 수온은 세계 평균보다 2배 이상 상승(약 1.44도)했다"며 "표층 수온선 북상 속도는 연간 3.52㎞로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아열대성 어종이 동해안을 점유하고 해파리 출현량과 출현 시기가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며 "어업인 피해 보상을 위해 해파리 수매가를 현실화하고 전 해수욕장에 방치 그물을 설치해 안전에 온 힘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반도 바다, 수온상승 생태변화 (PG)
[장현경 제작] 사진합성·일러스트
기후변화에 매우 민감한 농업 분야는 '농업연구개발 혁신방안'을 마련해 현안 해결 프로젝트를 기획·추진하고 있다.
안옥선 농촌진흥청 신농업기후대응사업단장은 "고온·저온 등 이상기후에 적응할 수 있는 품종을 개발하고 기후와 계절성을 극복할 수 있는 작목 배치와 작물 이어짓기 체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어 "변화한 기후 환경을 고려해 작목별 농작업 일정을 수정하고 생육단계별 기상재해 대응 기술을 새롭게 작성·배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올 상반기 국내 시민단체로는 최초로 동해안과 서해안 일대 해안 침식 실태를 조사한 녹색연합 서재철 전문위원은 해안침식 속도가 더욱 빨라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서 전문위원은 "기후변화는 생존의 문제이자 기후변화 감축에 경제의 사활이 걸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국토·환경·해양·농업·산림 등 모든 정책에 탄소중립을 기준으로 삼아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진태 강원특별자치도지사는 기후 격변의 심각성에 대해 "전 지구적인 아젠다로 소홀히 할 수 없는 과제"라며 "도에서도 기후변화 대응하면서 탄소중립, 녹색성장을 토대로 한 미래산업을 육성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상 기후로 물에 잠긴 겨울축제장
[촬영 이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