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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트해·대만해협서 잇단 해저케이블 훼손 왜?…회색지대 전술 의심
기사 작성일 : 2025-01-08 17:01:03

대만해협 케이블 절단 의심 선박


대만해협에서 발생한 해저 케이블 훼손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의심받는 '순싱39호' [AFP=. 대만 해순서(해경)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고동욱 기자 = 발트해에 이어 대만해협에서도 고의적 사보타주(파괴 공작)로 의심되는 해저 케이블 훼손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침묵을 지키고 있지만, 양국이 민간 선박 등을 내세우는 '회색지대 전술' 혹은 '하이브리드 전술'을 벌이고 있다는 의심이 서방에서는 확산하고 있다.

대만 해순서(해경)는 지난 3일 현지 통신사인 중화텔레콤(CHT)으로부터 북부 지룽항 외해의 해저 케이블이 훼손됐다는 신고를 받고, 사고해역에서 발견된 카메룬 선적 화물선 '순싱39호'의 관련성을 추적하고 있다.

이 화물선은 카메룬 국기를 달고 있지만 선주는 홍콩 국적이며, 선원 7명은 모두 중국 국적이다.

악천후로 인해 순싱39호를 직접 나포하지 못한 대만 해순서는 다음 행선항인 부산항에 협조를 요청해둔 상태다.

앞서 지난해 11월에는 북유럽 발트해에서 비슷한 사건이 벌어졌다.

당시 핀란드에서 독일로 이어지는 1천200㎞ 길이의 해저 케이블과, 리투아니아와 스웨덴 고틀란드섬을 연결하는 218㎞의 해저 케이블이 예고 없이 절단됐다.

당시에도 중국 선적 선박 '이펑 3호'가 주변 해역에서 자동식별장치를 끈 채 닻을 내리고 180㎞ 이상 항해한 것으로 나타났다.

독일,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 등 서방은 이펑 3호가 러시아 정보기관의 사주를 받고 고의로 해저 케이블을 훼손했을 가능성을 의심하며 12월 19일 중국과 합동으로 승선 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결과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주요 서방 언론들도 해저 케이블 훼손 사건을 주시하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7일(현지시간) 대만해협 케이블 절단 사건을 보도하면서 "지난해 발트해 사건 때에도 중국의 벌크선이 연루됐다는 의심을 받은 바 있다"며 연관성에 주목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도 이날 "유럽 내에서 해저 통신 케이블 등을 겨냥한 명백한 사보타주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는 가운데 대만해협 사건이 발생했다"고 전했다.



이펑 3호(왼쪽)와 덴마크 군함[EPA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두 사건을 연관 지어 생각하게 만드는 요인은 시간상으로 가깝고 중국 선박이 등장한다는 점만이 아니다.

케이블 절단의 의도와 실행 방식 등을 고려할 때 이른바 '회색지대 전술'이나 '하이브리드 전술'의 하나로 이뤄졌음을 의심케 하기 때문이다.

대만 당국은 정규군이 아닌 민병대나 무장한 민간 선박 등을 활용해 도발하거나 대만해협 중간선을 상시 침범하고 남중국해 영유권을 주장해 특정 지역을 분쟁지대로 만드는 행위를 회색지대 전술로 칭한다.

하이브리드 전술은 사이버테러, 정보전, 기반 시설에 대한 사보타주 등 비군사적인 수단을 동원하는 것을 말한다.

국가가 전면에 나서는 전통적인 군사작전의 형식을 회피해 상대에게 피해를 입히려 한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발트해 케이블 절단은 러시아가 서방의 우크라이나 지원을 막기 위해 벌인 공작이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러시아가 원유 밀수출에 동원하는 '그림자 선단'을 동원해 통신 케이블만이 아니라 전력 케이블이나 가스관 등의 사보타주에 나선다는 의심도 크다.

이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발트해 해상 훈련을 벌이는 등 해저 기반 시설 보호를 강화하고 있다.

대만해협 케이블 절단 역시 대만의 고립과 약화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중국의 사주에 따른 고의적 행동 아니냐는 것이 서방의 의심이다.

가디언은 "해저 연결망은 중국의 공격을 방어할 주요 인프라의 핵심 취약 지점이라고 반복적으로 거론돼 왔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지난 2023년 대만이 실효지배하는 마쭈 열도와 본섬을 잇는 케이블이 절단되면서 거주민들의 인터넷 연결이 몇 주간 단절됐던 사례를 언급했다.

NYT는 케이블 절단과 같은 '괴롭히기'가 반복될 경우 대만의 대응 역량이 약화하거나 경각심이 낮아지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아시아 해양 투명성 이니셔티브 이사인 그레고리 폴링은 "불법적으로 닻을 끌고 다니는 선박이 있을 때마다 해경을 출동시킬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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