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원이 건설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된 체코 두코바니 원전 건설 지역 전경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세종= 차대운 기자 = 한미 양국 정부가 8일(현지시간) 제3국으로의 원전 수출 문제와 관련한 당국 간 소통 체계를 구축하는 내용을 담은 약정(MOU)에 정식으로 서명했다.
한미 정부가 민간의 '팀 코러스'(KORUS·KOR-US) 차원 협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정치적 여건을 일단 조성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3월 최종 계약 시한을 앞두고 한국수력원자력과 웨스팅하우스의 지재권 분쟁 해소를 통한 체코 원전 수주 확정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미 양국 정부가 이날 워싱턴DC에서 서명한 '한미 원자력 수출 및 협력 원칙에 관한 기관 간 약정'은 한미 양국이 철저한 비확산, 원자력 안전 기준 준수 원칙을 전제로 양국 기업이 세계 원전 시장에 함께 진출하는 것을 독려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 정부는 이번 약정이 직접적으로 민간 기업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양국 핵심 원전 기업이 '팀 코러스' 차원의 협력을 도모하는 데 긍정적 환경을 조성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앞서 산업통상자원부는 작년 11월 약정 가서명 단계에서 "최종 서명 시 향후 글로벌 시장에서 양국 간 원전 수출 협력이 긴밀히 이뤄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힌 바 있다.
양국 정부는 이날 발표한 공동 보도자료에서 "이번 MOU는 양국의 오랜 파트너십에 기반하고 있다"며 "민간 원자력 기술에 대한 양국의 수출통제 관리를 강화하는 가운데 제3국의 민간 원자력 발전 확대를 위한 양측 기관 간 협력 프레임워크를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약정은 체코 원전 수출 문제를 놓고 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가 지재권 분쟁 해소 협상을 진행 중인 상황에서 이뤄졌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웨스팅하우스는 한수원이 체코에 공급하려는 최신 한국형 원전이 APR1400이 자사 기술을 기반으로 한 것이라면서 자국 법원에 소송을 내는 등 한수원의 수출을 저지하려 한다. 한수원은 체코 측 요구에 따라 APR1400의 용량을 줄여 '다운사이징'한 APR1000을 체코에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한수원은 그간 APR1400이 국산화를 이룬 설비로 제3국 수출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펴왔다.
다만 체코 원전 건설 사업의 최종 계약 시한이 3월까지인 상황에서 원만한 분쟁 타결을 통한 미 수출 통제 신고 마무리가 국제 분쟁 소지를 없애는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보고 협상 테이블에서 분쟁 해결을 도모하고 있다.
한전·한수원, 웨스팅하우스 사장단 면담
한국전력과 한국수력원자력이 방한 중인 미국 원전 기술 기업 웨스팅하우스(WEC)의 사장단과 각각 면담을 갖고 해외 원전 사업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고 9일 전했다. 사진은 한전-웨스팅하우스 사장단 면담 모습. 2022.6.9 [한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는 최근 긍정적 분위기 속에서 상호 접근점을 모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한수원이 체코 원전 수출과 관련해 웨스팅하우스에 조단위 로열티 혹은 일감을 주고, 향후 다른 제3국 원전 수출도 공동 추진하는 내용의 합의안 도출이 추진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향후 '팀 코리아' 대신 '팀 코러스'로 제3국 원전 시장에 진출하면 한국 기업에 돌아가는 이익은 독자 진출보다는 적어지는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정부와 한수원은 세계 에너지 안보 우려 대두, AI 붐이 낳은 전력난 등에 따라 한때 위축된 원전 시장이 다시 커지는 상황에서 소모적 분쟁에 에너지를 빼앗기기보다 커지는 시장을 공동으로 공략하는 것이 수주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등 양국 모두의 장기적 이해관계에 부합한다고 여기고 있다.
다만 한국과 미국의 정치적 환경 변화가 정부 차원에서 공감대를 형성한 '팀 코러스' 협력에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국내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사태의 영향으로 정국이 혼란에 휩싸이고 정부의 주요 국정과제 추진 동력이 눈에 띄게 약화한 상황이다. 산업부는 최근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을 기존 3기에서 2기로 줄이는 '조정안'을 국회 상임위에 내기도 했다.
그간 야권은 체코 원전 '저가 수주' 우려를 꾸준히 제기해왔다. 이에 정치적 부담을 지더라도 일정한 양보와 타협이 불가피한 지재권 분쟁 타결안을 확정 짓기 위한 정부 차원의 결단이 이뤄지기 어려워진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편, 미국 쪽에서는 이달 출범할 트럼프 신정부가 바이든 행정부가 종료 직전 체결한 법적 구속력이 없는 일종의 '약속'을 이어받으려 할 지에 관심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