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휘날리는 팔레스타인·이란 국기
16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의 광장에서 시민들이 팔레스타인 국기와 이란 국기를 흔들고 있다. [EPA=]
고동욱 기자 =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휴전이 중동 지역 내 이슬람 세력이 힘을 잃는 경향을 재확인시켜주고 있다는 외신 분석이 나왔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16일(현지시간) "가자지구의 하마스, 레바논의 헤즈볼라 및 이란과 시리아의 여러 시아파 이슬람 무장세력 모두가 상당히 약화된 상태로 가자 전쟁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우선 전쟁의 당사자인 하마스의 경우 명목상으로 '휴전'을 얻어냈으나 실질적으로는 팔레스타인에서 지배력이 크게 약화할 것으로 가디언은 내다봤다.
야히야 신와르, 이스마일 하니예 등 지도자들이 줄줄이 제거됐고, 15개월간 이스라엘의 집중 공격을 받으며 수많은 지휘관을 잃고 군사력도 축소됐다는 것이다.
하마스가 야히야 신와르의 동생 무함마드가 지휘하는 가자지구 내부의 강경론과 외부 지도자들의 온건론으로 사실상 쪼개진 상태라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2023년 10월 기습 공격으로 이스라엘의 보복 공격을 촉발해 장기간 큰 피해를 초래한 탓에 상당수 민심이 하마스에 등을 돌린 것으로 관측된다.
가자지구 알아자르 대학의 음카이마르 아부사다 교수는 "가자 주민들은 하마스에 지쳐 있다"며 "그들은 재건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받아들일 수 있고, 하마스가 집권한다면 국제사회가 한 푼도 쓰지 않으리라는 것도 알고 있다"고 전했다.
하마스의 쇠퇴는 주변 중동 지역의 정세 급변과도 맞물려 있다.
이른바 '저항의 축'의 주축이자 이란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세계 최강의 비정규군'이라고 평가받았던 헤즈볼라는 지난해 10월까지 이어진 전쟁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수장이던 하산 나스랄라가 사망하는 등 지도부 대부분이 제거돼 당분간 이란의 '대리 세력'으로 기능하기 어려워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런 가운데 이란의 헤즈볼라 지원 통로 역할을 하던 시리아에서는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이 붕괴했고, 레바논에서는 친서방 성향의 조제프 아운 대통령이 선출됐다.
헤즈볼라와 하마스가 잇따라 사실상 패배한 것은 이란의 후원 아래 세를 키우던 다른 군소 이슬람 세력에도 직간접적인 타격이 될 전망이다.
비록 예멘에서 친이란 반군 후티가 큰 타격을 받지 않은 채 이스라엘과 맞서고 있지만, 가자 전쟁과 함께 후티의 공세도 수그러들 것이란 전망이 많다.
CNN에 따르면 후티 수장 압둘 말리크 알후티는 이날 가자 전쟁이 멈춘 동안 홍해에서 이스라엘 화물선에 대한 공격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플로리다주 글로벌 국가안보연구소의 중동 전문가인 아르만 마흐무디안은 "이란, 이라크, 레바논 등의 주민들은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질문하기 시작할 것"이라며 "저항의 축이 사기를 회복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폐허가 된 가자지구
[AP= 자료사진]
다만 이들의 쇠퇴가 중동 지역의 평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자 전쟁의 끝에서 새로운 이슬람 극단주의 물결이 시작될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최근 들어 지정학적 역학관계가 불안정해진 틈을 타 수니파 계열 극단주의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가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는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새해 첫날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발생한 트럭 테러 용의자가 IS 깃발을 소지하고 있었다는 점이 확인되기도 했다.
아사드 정권을 무너뜨리고 시리아의 실권을 장악한 아메드 알샤라(반군 시절 가명 아부 무함마드 알졸라니)는 테러단체 알카에다 출신이다.
다만 알샤라는 테러단체 지정 해제 등 국제사회의 인정을 얻어내기 위해 알카에다와의 인연을 끊었다며 대외적으로 포용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알샤라의 '실용주의'가 이어진다면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들의 정당성이 약화할 수 있다고 가디언은 전망했다.
또 가자 전쟁을 계기로 국제사회의 관심사로 떠오른 팔레스타인 지역에 평화가 지속된다면 중동 지역을 안정화하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