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현지시간) 트럼프 주니어를 만난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과 부인 한지희 여사. [신세계그룹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워싱턴= 전성훈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 참석차 미국을 방문 중인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현지 정·재계 유력 인사들과 교류하며 광폭 행보를 보였다.
21일(이하 현지시간) 워싱턴과 국내 정·재계에 따르면 지난 17일 뉴욕 JFK공항을 통해 미국에 입국한 정 회장은 취임식 당일까지 사흘간 부인 한지희 여사와 함께 숨돌릴 틈 없는 일정을 소화하며 글로벌 네트워크를 다졌다.
정 회장 부부는 같은 날 워싱턴DC에 도착하자마자 트럼프 대통령의 장남이자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실세인 트럼프 주니어를 만나 다양한 인사를 소개받았다.
벤처투자기업 1789 캐피탈을 공동 설립한 오미드 말릭, 크리스토퍼 버스커크와 함께 식사하며 다양한 주제로 대화했다. 또 다른 사교 행사에서는 케빈 스타크 오클라호마주 주지사를 만났다.
지난달 중순 트럼프 대통령 자택이 있는 플로리다주 팜비치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만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의 인연을 계기로 X(엑스·옛 트위터)와 우버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이 공동 주최한 프라이빗 행사에도 초대받기도 했다. 참석자 중 한국인 기업인은 정 회장이 유일했다고 한다.
정 회장은 이 자리에서 혁신기업 투자자로 유명한 브래드 거스트너, 케빈 스타크 등 여러 참석자와 교류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20일(현지시간) 트럼프 2기 행정부의 JD밴스 부통령이 주관한 네트워킹 행사에서 씨티그룹 임원 출신 마이클 클라인(가운데)과 앤드루 퍼거슨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장 지명자(오른쪽) 등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 [신세계그룹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전날 미 국회의사당 인근에 있는 체육관 '캐피털 원 아레나'에서 생중계로 취임식 장면을 지켜본 정 회장 부부는 곧바로 JD 밴스 부통령이 주관한 네트워킹 행사에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선 한국의 공정거래위원회에 해당하는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의 앤드루 퍼거슨 위원장 지명자를 비롯한 미 정부 관계자와 공화당 주요 인사는 물론 금융계 고위 관계자까지 두루 접촉했다.
기업친화적 성향을 가진 퍼거슨 위원장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친기업 정책을 진두지휘할 인물로 꼽힌다.
이어 정 회장 부부는 곧바로 당일 저녁 미 대통령 취임식 행사의 백미로 꼽히는 무도회에 참석했다.
정 회장 부부가 함께한 무도회는 3개의 취임 축하 무도회 중 '스타라이트 볼'(Starlight Ball)이다.
트럼프 대통령 부부는 물론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를 포함한 일가족과 주요 인사가 모두 참석하는 만찬 겸 사교 행사다.
나머지 두 개의 무도회와 달리 트럼프 대통령 측이 까다로운 기준에 따라 선별한 VIP(Very Important Person)만 명함을 내밀 수 있는 무도회로 알려져 있다.
실제 초대 인사 면면도 화려하다.
트럼프 대통령에 가장 기부를 많이 하는 인물로 알려진 이스라엘 출신의 미리엄 애덜슨과 미국프로농구(NBA) 댈러스 매버릭스 구단주이자 카지노 재벌인 남편 셸던 애덜슨 등 억만장자들만 초대됐다.
행사를 주최한 인물로는 엔터테인먼트와 부동산 사업가 출신으로 NBA 휴스턴 로키츠의 구단주 틸먼 페르티타, 미국프로야구(MLB) 토드 리케츠 시카고 컵스 공동 구단주와 그의 아내 실비 레제르 등이 있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플랫폼 최고경영자(CEO)도 공동 주최자 중 한 명으로 이름을 올렸다.
정 회장 부부는 트럼프 주니어의 초대를 받았다.
행사에선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인공지능(AI) 및 암호화폐 정책 책임자로 임명된 데이비드 삭스와의 만남도 이뤄졌다.
정 회장이 삭스에게 "AI 같은 신기술을 유통에 접목해 고객 경험을 확대하는 부분에 관심이 많다"고 하자 삭스는 "유통업은 소비자들이 AI의 발전상을 가장 피부에 와닿게 느낄 수 있는 산업"이라고 화답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2기 행정부 역시 신기술이 국민 생활의 질 향상으로 이어지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2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유니온 스테이션에서 열린 스타라이트 무도회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마크 루비오 국무장관을 만나 얘기를 나누고 있다. [신세계그룹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정 회장은 트럼프 2기 내각 지명자 가운데 처음으로 상원 인준을 통과한 마크 루비오 국무장관과도 대면해 얘기를 나눴다고 한다.
정 회장은 국내 정·재계를 통틀어 트럼프 일가와 가장 관계가 돈독한 인사로 손꼽힌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실세로 언급되는 트럼프 주니어와는 독실한 개신교 신자라는 종교적 공통점을 바탕으로 2년 넘게 긴밀하게 교류해왔다.
지난달 중순에는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당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을 직접 만나 장시간 대화를 나눴다. 지난해 미 대선 이후 트럼프 당선인을 일대일로 만난 국내 인사는 정 회장이 유일하다.
트럼프 대통령과 직간접으로 연결되는 대미 창구가 전무한 상황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 시대 정 회장의 입지나 위상이 그만큼 돋보인다.
이 때문에 재계는 물론 정계에서도 정 회장이 한미 소통 창구를 구축하는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다.
정 회장도 기업인으로서 임무를 충실히 하면서 국익에 보탬이 된다면 관련 소임을 맡을 수 있다는 의중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은 지난 17일 뉴욕 JFK 국제공항에서 취재진과 만나 "외교관이나 행정가가 아니어서 국가 어젠다(의제)를 말할 처지는 아니지만 기업인의 한 사람으로서 미국이라는 큰 시장에 다양한 창구가 만들어지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무도회를 끝으로 방미 일정을 대략 마무리한 정 회장은 "그동안 쌓아온 글로벌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신세계그룹의 혁신과 고객 만족을 위한 본업 경쟁력 강화와 시너지를 낼 수 있게 하겠다"며 "진실한 소통을 통해 혁신을 추구하는 기업가 역할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