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digital

[샷!] 500인분 식사 준비…"몸져누워버렸다"
기사 작성일 : 2025-01-27 07:00:29

콩나물 500인분


지난 23일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의 '밥퍼나눔운동본부'에서 급식 봉사가 진행된 가운데 손질될 콩나물 500인분이 싱크대를 가득 메웠다. 2025.1.27. [촬영 김유진]

김유진 인턴기자 = 6시간 봉사를 마치고 집에 오자마자 몸져누워버렸다.

마치 감기몸살에 걸린 것처럼 온몸이 바들바들 떨렸고 입에선 곡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 순간 함께 봉사를 했던 조희원(21) 씨의 말이 떠올랐다. "저는 그저께부터 계속 나오고 있어요. 오늘이 봉사 3일 차예요."

지난 23일 오전 9시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에 위치한 밥퍼나눔운동본부(밥퍼). 아침부터 일손을 돕기 위해 찾은 24명의 자원봉사자로 건물 내부는 북적였다.

남녀노소가 모인 가운데, 외조부모부터 손자까지 3대가 함께 방문한 가족은 용인시 수지구에서 제시간에 도착하기 위해 오전 6시40분에 집을 나섰다고 했다.

현장에서 나눠준 주황색 앞치마와 두건을 두르고 준비를 마친 봉사자들은 점심 식사 준비에 나섰다.

주방장의 지시에 따라 4~5명씩 역할분담이 이뤄졌다.


업무 배치 받는 봉사자들


지난 23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의 '밥퍼나눔운동본부'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업무 배치를 받고 있다. 2025.1.27. [촬영 김유진]

첫 번째 과제는 '재료 손질'. 다음날 쓸 식재료를 전날 미리 준비해 놓는 방식이다.

밥퍼는 매일 약 500인분의 점심 식사를 준비하기 때문에 식재료도 당연히 엄청난 양이었다.

가장 먼저 양파의 껍질을 까야 했다. 양파의 개수가 너무 많아 몇 개인지 셀 수도 없었다. 한 사람이 양파의 뿌리 부분을 잘라주면 나머지 두 사람이 껍질을 까고 물에 세척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양파 껍질을 까면 깔수록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양파 세척이 끝나자마자 바로 이어서 대량의 대파와 콩나물이 차례로 들어왔다.

500인분의 콩나물은 대형 싱크대를 가득 채웠다. 모두가 이렇게 많은 양의 콩나물은 처음 본다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물로 세척한 콩나물은 채에 담은 뒤 칼로 잘라야 했다. 밥퍼를 찾는 어르신 중 치아가 없는 분이 많아 재료를 항상 잘게 잘라 준비해야 한다고 조리장은 설명했다.


500인분 점심 식사 배식 시작


지난 23일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의 '밥퍼나눔운동본부'에서 김유진 인턴기자(왼쪽에서 두번째)가 점심 식사 배식을 하고 있다. 2025.1.27. [촬영 김유진]

재료 준비가 끝나자마자 숨 고를 틈도 없이 바로 점심 식사 배식 준비에 들어갔다. 이날 점심 메뉴는 흑미밥과 들깨미역국, 장조림과 시금치무침 등이었다.

오전 11시 점심 배식이 시작되는데 30분 전 이미 테이블은 만석이었다.

3년째 밥퍼를 이용하고 있다는 임민우(80) 씨는 "밥퍼는 그냥 밥만 먹는 데가 아니다. 외로운 독거노인들에게 따뜻한 대화의 장이기도 하다"며 "거의 항상 앉는 자리가 정해져 있어서 매일 오던 분이 안 나오면 서로 '무슨 일이 있나' 걱정하며 안부를 챙겨주는 사이가 됐다"고 말했다.

인근 전농동에 거주하는 서옥례(95) 씨는 "집이랑 가까워 날마다 온다. 밥퍼에 오기 시작한 지는 한 8년은 된 것 같다"며 "내가 하루만 안 와도 밥퍼에서 '왜 안 오시냐'며 전화가 온다. 항상 감사한 마음"이라고 했다.

본격적으로 배식이 시작됐다. 갖가지 반찬통과 국·밥통의 뚜껑이 열리자 김이 모락모락 나며 순식간에 고소한 내음이 가득 퍼져 입맛을 돋웠다.

배식은 그래도 좀 수월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전혀 아니었다.

반찬통이 놓여있는 배식 테이블이 생각보다 낮아 계속 허리를 숙여야 했고 그렇게 1시간 정도 하다보니 자연스레 허리에 힘이 가해져 점점 끊어질 것 같이 아파왔다.

더군다나 개인적으로 평발이 매우 심한지라 오전부터 계속 서서 일을 하다 보니 발바닥에 불이 나는 것 같은 통증이 시작됐다. 봉사가 끝난 뒤 확인해 보니 물집이 잡혀 있었다.

그래도 음식을 맛있게 드시는 어르신들의 미소를 보니 마음은 가볍고 따뜻해졌다.


배식하는 봉사자들


지난 23일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의 '밥퍼나눔운동본부'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점심 식사 배식을 하고 있다. 2025.1.27. [촬영 김유진]

밥퍼 봉사만 벌써 4번째인 김경민(18) 군은 "두 번째로 봉사하러 왔던 날, 한 할머니께서 '학생 잘 먹었어. 고마워'라고 말씀해주신 게 기억에 남아 꾸준히 봉사하러 오고 있다"고 밝혔다.

초등학생 자녀들과 함께 첫 봉사에 나선 최우령(44) 씨는 "아이들이 살아가는 데 있어 공부가 전부가 아니란 걸 깨닫고, 주변 이웃을 돌보는 사람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후원 100%로 운영되는 밥퍼는 한때 어려운 시기를 보내기도 했다. 2022년 동대문구청에서 밥퍼가 증축한 가건물이 불법 증축이란 이유로 소송을 걸면서 기업들로부터 후원이 끊긴 것이다.

그때 밥퍼에 든든한 구원의 손을 내민 건 이날의 봉사자들처럼 개인 후원자들인 '개미군단'이었다.

밥퍼 관계자는 "소송 문제가 터지면서 기업들의 후원은 많이 줄었지만 정말 감사하게도 개인 후원은 오히려 많이 늘었다"며 "물가가 올라서 재료비도 예전보다 많이 들어가는데 개미군단 분들 덕분에 큰 타격 없이 밥퍼가 지금까지도 운영을 이어올 수 있는 것"이라 설명했다.

이날 3대 가족 봉사자 중 손자인 박찬(10) 군은 저금통을 들고와 기부하기도 했다. "외할머니께 받은 용돈을 차곡차곡 모아왔어요. 좋은 일을 한 것 같아 뿌듯해요."

2009년부터 밥퍼 봉사자로 활동하다 이젠 2년 차 밥퍼 주방장이 된 김동열(64) 씨는 "밥퍼에 오시는 분이 많아진다는 건 그만큼 세상이 살기 힘들다는 걸 의미하는 것 같다"며 "내게 꿈이 있다면 밥퍼에 오시는 분들이 점차 줄어들어 어려운 사람이 없고 모두가 살기 좋은 나라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밥퍼를 찾은 어르신들


지난 23일 오전 10시30분께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의 '밥퍼나눔운동본부' 내부가 점심 식사를 하러 오신 어르신들로 가득 찼다. 2025.1.27. [촬영 김유진]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