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digital

미국 파리협정 탈퇴에 '인류 조별 과제' 목표 잃을 판
기사 작성일 : 2025-01-28 08:00:35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취임식이 열린 워싱턴DC 실내체육관 '캐피털원 아레나'에서 미국의 파리협정 탈퇴를 통보하는 서한에 서명한 뒤 들어보이고 있다. [AFP= 자료사진]

이재영 기자 = 인류가 한 조가 돼 진행하던 가장 중요한 과제가 목표를 잃을 위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을 파리협정에서 탈퇴시키기로 하면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일 취임 직후 주유엔대사에게 파리협정에서 탈퇴한다는 서면 통지서를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측에 즉시 보내도록 지시하는 행정명령을 발령했다.

백악관은 "통보되는 즉시 미국이 협정에서 탈퇴하고 협정상 의무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간주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파리협정뿐 아니라 유엔기후변화협약 하에 체결된 모든 협정과 조약 등에서도 탈퇴를 통보하라고 지시했다.

이런 명령들은 '국제 환경협약에서 미국을 우선에 두는 조처'라는 것이 백악관의 설명이다.

28일 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국에 따르면 파리협정 당사국이 탈퇴를 통보하면 '탈퇴서가 유엔에 접수된 날부터 1년 후' 또는 '탈퇴서에 명시된 날' 중에 더 늦은 날에 탈퇴의 효력이 발효된다.

파리협정을 탈퇴하려면 3년이 필요해 트럼프 대통령 임기 막바지까지 미국이 협정에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나왔으나 이는 규정을 오해한 것이다.

파리협정 제28조는 협정이 발효되고 3년이 지났을 때부터 유엔에 통지서를 보내 통지 1년 후 탈퇴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파리협정 발효일은 2016년 11월 4일로, 2020년 11월 4일부터 탈퇴가 가능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이 첫 번째 임기 때인 2017년 6월 파리협정 탈퇴를 명령했을 때는 3년 후 탈퇴가 이뤄졌다.

그러나 협정이 발효된 이후인 현재는 통보 후 1년이 지나면 탈퇴 된다.

파리협정을 탈퇴하면 5년마다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수립하고 점검(전 지구적 이행 점검·GST)할 필요가 없어진다.

즉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미국이 앞으로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설정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작년 유럽연합(EU)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온실가스 배출량은 2023년 기준 59억6천만t(이산화탄소 환산량)으로 전 세계 배출량의 11%를 차지한다.

김성진 한국환경연구원 탄소중립연구실장은 "미국이 파리협정에서 탈퇴하면 각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취합해 (기온 상승 폭을 제한하는 데) 남은 온실가스양이 얼마인지 산출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미국이 이미 수립한 NDC도 폐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파리협정의 '상위법'과 같은 유엔기후변화협약은 탈퇴하라고 지시하지 않았고, 상원 비준을 거친 유엔기후변화협약은 대통령 행정명령으로 탈퇴할 수 없다는 점에서 파리협정 탈퇴 영향이 제한적일 수 있다고 기대하기도 한다.



작년 11월 21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한 도로가 홍수에 잠겨있다. [EPA= 자료사진]

앞서 미국 보수성향 싱크탱크 헤리티지재단 주도로 만들어진 '프로젝트 2025'에는 미국을 유엔기후변화협약에서 탈퇴시키는 제안이 들어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직후 시행한 정책 상당수가 프로젝트 2025와 유사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또 한편에서는 '트럼프 이전에도 미국이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에 노력해온 적 없었다'고 냉소적인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미국의 탈퇴로 파리협정으로 형성된 '신기후체제'가 붕괴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여느 분야 협약과 마찬가지로 기후협약도 '세계 최강국'인 미국이 빠지면 힘을 잃는다. 파리협정 이전 '교토의정서 체제'는 중국을 1차로 온실가스 감축 의무가 부여된 선진국이 아닌 개발도상국으로 규정하고 2001년 미국이 탈퇴하면서 유명무실해졌다고 평가된다.

현재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 30%를 배출하는 중국은 2030년에 온실가스 배출량이 정점을 찍도록 한다는 것이 목표다. 이 목표는 달리 해석하면 2030년까지는 배출량이 늘어나는 것을 용인한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마저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데 노력하지 않는다면 배출량이 중국이나 미국보다 적은 국가들은 불만과 함께 감축을 포기할 수 있다.

최원기 국립외교원 교수는 지난 2017년 '트럼프 대통령의 파리 기후협정 탈퇴: 배경과 전망' 보고서에서 "미국의 파리협정 이행 중단은 전 지구적 기후변화 대응 노력을 약화하고 협정의 실효성을 저하할 것"이라며 "파리협정 후속 협상의 동력도 약화하고 미국의 리더십과 신뢰성도 약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린피스 활동가가 21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주독일 미국 대사관 앞에서 '미래 대 트럼프'라고 쓰인 배너를 들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파리협정 탈퇴 방침에 항의하고 있다. [EPA= 자료사진]

미국의 파리협정 탈퇴는 국제사회뿐 아니라 미국 내에서도 지지가 많지 않다.

AP통신과 미국 시카고대 여론연구센터(NORC)가 9∼13일 미국 성인 1천14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파리협정 탈퇴를 강력히든, 부분적으로든 지지하는 응답자는 21%에 그쳤다. 반면 반대한다는 응답자는 52%에 달했다.

김성진 실장은 "캘리포니아주와 같이 진보 성향이 짙은 주를 중심으로 트럼프 대통령 기후정책에 대한 저항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면서도 "공화당이 의회도 장악하고 있어 정책이 수정될 가능성은 작다고 본다"고 말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