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아라초등학교 꿈낭 거점통합돌봄센터
(제주= 변지철 기자 = 제주 아라초등학교 꿈낭 거점통합돌봄센터의 어린이들. 지난 1월 19일 촬영. 2025.2.1
(제주= 변지철 기자 = "마음 놓고 아이 낳아 키울 수 있는 사회, 어떻게 안 될까요?"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한결같이 내뱉는 말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제주의 출생아 수는 2019년 4천500명, 2020년 3천989명, 2021년 3천728명, 2022년 3천599명, 2023년 3천22명, 2024년 11월 기준 2천930명으로 해마다 줄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곧 연간 출생아 수가 3천명 밑으로 내려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취업난과 치솟는 집값 등 저출생의 원인은 많지만, 아이를 낳아도 키울 여건이 안 된다며 돌봄 공백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크다.
제주도는 부모의 양육 부담을 해소하기 위해 지난해 3월 전국 최초로 초등주말돌봄센터 '꿈낭'을 도입했다.
1년간 꿈낭을 이용한 부모들의 반응은 어떨까.
◇ 일과 생활의 균형…맞벌이 부부의 든든한 버팀목
'꿈낭'은 제주도와 제주도교육청, 지역사회가 함께 주말에도 부모의 양육 부담을 덜고 돌봄 공백을 해소하기 위해 도입한 제주형 주말 돌봄교실이다.
'꿈낭'은 '꿈'에 '나무'를 뜻하는 제주어 '낭'을 합성한 단어로, 주말돌봄센터가 아이들이 창의성 있는 꿈나무로 자라도록 돕는 따뜻한 보금자리가 되기를 바란다는 의미가 담겼다.
제주지역의 맞벌이 가정 비율은 63.5%로 전국 평균 46.1%를 크게 웃돌아 도내 부모들이 주말에 일과 생활의 균형을 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양질의 돌봄서비스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특히 관광업과 농업, 자영업의 비중이 높은 제주에는 주말에도 일을 해야 하는 학부모가 많아 주말 돌봄에 대한 수요가 많다.
초등주말돌봄센터 '꿈낭' 개소식
(제주= 지난해 3월 23일 제주 서귀포시 동홍초등학교에서 열린 초등주말돌봄센터 '꿈낭' 개소식의 모습. [제주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지난해 3월 제주시 아라초등학교와 서귀포시 동홍초등학교 2곳에 꿈낭 초등돌봄센터가 문을 열고 12월까지 774명의 아동이 이용했다.
는 일요일이던 지난 1월 19일 아라초등학교 꿈낭 거점통합돌봄센터를 찾아 주말돌봄을 이용하는 부모와 만났다.
부모들의 반응은 매우 긍정적이었다.
부부가 함께 주중·주말반 학원을 운영하는 한웅규(45)씨는 지난해 주말마다 3학년 쌍둥이 자녀를 꿈낭에 맡겼다.
한씨는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며 아이들을 맡겨봤는데 1년간 아이가 정말 활동적으로 변했고 사회성이 생겼다"며 "특히 꿈낭에서 하는 프로그램인 문화체험 활동 '긴나들이'를 정말 좋아해서 달력에 날짜를 표시해놓고 손꼽아 기다릴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는 "(학기 중 여행과 같은 교외 체험학습을 가지 못해 학교에 빠짐없이 출석하는 아이들을 비하하는) '개근 거지'라는 말이 생겨나는 시대다. 주말에도 일을 하는 저희 부부는 상황이 여의치 못해 제대로 나들이조차 다니지 못하는데 꿈낭에서 주기적으로 주말에 아이들을 데리고 다녀주기 때문에 너무나 고맙다"고 강조했다.
한씨는 "나라에서는 아이 낳으면 출산장려금을 준다고 하지만 정작 아이가 커가면서 아이 양육을 위해 지원해 주는 게 거의 없다"며 "이 같은 상황에서 주말 돌봄 꿈낭은 우리 부부에게 '가뭄의 단비'와 같다"고 말했다.
식당을 경영하는 이형문(45)씨 부부도 마찬가지다.
평일은 물론 토요일 밤늦게까지 가게 영업을 한 뒤 일요일 하루 쉬는 일상을 이어오는 이씨 부부에게 꿈낭은 일주일을 살아갈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이씨는 "일요일 아침 아이가 배고파서 늦잠을 자는 아빠를 깨운다. 그것도 조금이라도 더 자라고 참다가 늦게 깨우는 것"이라며 "꿈낭에 오니 일단 이런 부분이 해결돼 정말 좋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부모들은 주말에도 아이를 2∼3개 학원에 보내야 하는 경제적 부담을 줄여주는 순기능이 있다고 답했다.
꿈낭 이용 아동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97.3%가 '만족한다'고 답했다.
이 같은 성과로 제주도는 행정안전부의 '지방자치단체 늘봄학교 연계·협력 우수사례' 공모에서 우수 지방자치단체로 선정됐다.
꿈낭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학습
(제주= 변지철 기자 = 지난 1월 19일 제주 아라초등학교 꿈낭 거점통합돌봄센터에서 어린이들이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경험하고 있다.2025.2.1
◇ "주말 돌봄 정착되면 저출생 극복에 도움 될 것"
꿈낭과 같은 주말 돌봄의 필요성은 부모의 양육 부담 해소와 같은 단순한 이유에 머물지 않는다.
쌍둥이를 키우는 맞벌이 부부 김경난(43)씨는 아이들의 사회화 기능을 강조했다.
김씨는 "외동아이를 키우는 가정에선 아이에게 친구를 만들어주려고 주말만 되면 부모 여럿이 1박에 40만원 하는 키즈펜션 비용을 물 쓰듯 하며 다닌다고 한다. 아이가 집에서 핸드폰만 붙들고 있게 하기보다는 이거라도 해야겠다는 심정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이곳 꿈낭에서는 믿음직한 교육자의 지도 속에 또래 친구도 만나고, 동생도, 형도, 누나도 만나는 등 하나의 사회를 경험하게 된다"며 "옛날 골목문화와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어린 시절 골목에서 동네 오빠, 언니, 동생들과 함께 제기차기·고무줄놀이·공기놀이·오징어게임 등을 하며 자연스럽게 사회성을 키웠던 추억을 이야기했다.
김씨는 "그런 지역사회 육아 인프라가 너무나 그립다"며 "컴퓨터 게임이 아니라 몸을 움직이고, 함께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어울림의 장이 있다면 아이들은 사회를 체험하고 자아를 발견하며 좋은 어른으로 커갈 것"이라고 말했다.
맞벌이 부부인 전은영(52)씨도 "부모라면 우리가 어렸을 때 (골목에서) 함께 놀았던 것처럼 우리 아이들도 놀면서 성장하길 바랄 것이다. 꿈낭이 그렇다"고 말했다.
전씨는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주말에도 학교에 간다고 하면 싫어하겠지만 꿈낭은 장소만 학교에 있을 뿐 공부하는 게 아니라 선생님과 아이들이 놀이를 통해 함께 즐긴다. 이런 부모의 바람이 이뤄지는 곳이 꿈낭"이라고 설명했다.
김형신 아라초등학교 꿈낭 주말돌봄센터장
(제주= 변지철 기자 = 지난 1월 19일 제주 아라초등학교 꿈낭 거점통합돌봄센터에서 김형신 센터장이 와 인터뷰하고 있다. 2025.2.1
부모들은 주말 돌봄이 아이의 사회성 외에도 부모의 삶과 가정을 더욱 윤택하게 해준다고 강조했다.
김경난씨는 "국가와 사회에서 아이를 주말만 맡아주더라도 부모는 그동안 미뤄뒀던 집안일과 병원치료를 할 수도 있고, 자기 계발을 통해 노후를 위한 자신의 역량을 강화하는 데 시간을 투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부모는 휴식과 환기를 토대로 더욱 용기를 가지고 사회생활에 임하고 출산·육아에 대한 자세를 긍정적으로 가지게 될 것이다. 사교육비 절감은 물론 경제적으로 건실한 가정으로 만들어줘 저출생 극복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형문씨는 "현재 주말 돌봄 인프라가 매우 부족하다. 이 좋은 정책을 소문내고 싶어도 인원 제한이 있기 때문에 경쟁률이 치열하게 될까 봐 두려워 다른 사람에게 말도 못 하는 상황이다. 꿈낭을 권역별로 더 많이 만들고, 꿈낭 선생님에 대한 지원도 더 많이 이뤄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제주여성가족연구원이 2023년 9월 발표한 '제주지역 아이돌봄지원사업 개선방안'을 보면 도내 600가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 50.3%가 주말 돌봄을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형신 아라초등학교 꿈낭 주말돌봄센터장은 "아이는 사람 속에 있어야 한다. 요즘 아이 하나, 둘 낳고 가족 간 연대 없이 고립돼 지내다 보니 사람 간 왕래 없이도 미디어를 통해 충분히 연대가 가능하다고 착각한다"며 "꿈낭은 놀이를 통해 아이들이 관계를 맺고 자연스럽게 배려와 소통의 방법을 익히도록 하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그 관계맺음이 지속적으로 오래 유지돼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이들과 부모들이 새 학년이 될 때마다 돌봄 대상으로 선정되지 못할까 봐 마음 졸이지 않도록 주말 돌봄이 초등학교 기간 안정적이고 연속적으로 유지돼야 하며, 더 많은 부모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주말 돌봄 센터가 곳곳에 만들어져야 한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