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미국 국경을 오가는 차량운반 트럭
[AFP 자료사진]
(뉴욕= 이지헌 특파원 = 경제 전문가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1일(현지시간) 캐나다와 멕시코, 중국을 상대로 한 관세 부과를 강행할 것임을 확인한 데 대해 관세정책이 애초 기대한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것은 물론 미국 경제에도 심각한 타격을 미칠 것으로 우려했다.
또 관세 부과 여파로 미국 소비자들이 자동차와 휘발유, 농산물 등 소비재의 가격 인상을 머지않아 체감하게 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미국의 무역적자가 외국을 도와주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관세 부과를 통해 무역적자 해결은 물론 일자리를 창출하고 재정수입을 늘릴 것이라고 장담해왔다.
그는 지난 23일 세계경제포럼(WEF) 화상 연설에서도 "관세는 우리의 경제를 강화하고 채무를 갚는 데 필요한 수천억 달러, 심지어 수조 달러를 우리 재정에 보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자리를 만들고, 공장을 세우고, 기업을 키우기에 미국보다 더 좋은 장소는 없을 것"이라며 관세를 피하려면 미국에 투자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이런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과는 달리 다수 경제학자는 관세 부과가 부과 대상국은 물론 미국의 성장률을 함께 낮추고 물가상승률마저 높이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캐나다·멕시코 25% 관세 부과 시 성장률 충격 추이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의 워윅 맥키빈 선임 위원은 지난 17일 보고서에서 멕시코·캐나다에 25% 관세 부과 시 트럼프 대통령 임기 4년간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이 2천억 달러(290조원) 감소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미국의 성장률을 2026∼2029년 매년 0.2%포인트가량 낮추고, 올해 인플레이션을 0.43%포인트 높이는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추산했다.
캐나다의 경우 성장률이 최대 1.3%포인트 떨어지고, 인플레이션은 올해 1.68%포인트 오를 것으로 내다봤고, 멕시코는 성장률이 최대 2%포인트 떨어지고 인플레이션이 올해 2.29%포인트 오를 것이라고 맥키빈 위언은 분석했다.
맥키빈 위원은 "북미 3개국의 경제는 고도로 통합돼 있다"며 "이 같은 수치는 3국 경제의 실제 피해를 과소평가했을 가능성이 높다"라고도 진단했다.
미국이 중국에 10%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이 그에 상응하는 보복 조치를 한 경우엔 4년간 미국의 GDP가 550억 달러(80조원) 감소하고, 중국의 GDP는 1천280억 달러(186조원)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맥키빈 위원은 분석했다.
한 마디로 미국보다 경제 규모가 작은 멕시코와 캐나다, 중국이 관세 여파로 더 큰 타격을 받겠지만 미국 경제에 미칠 부정적 영향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멕시코·캐나다 25% 관세 부과 시 인플레이션 충격 추이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전문가들은 관세 부과가 미국 산업을 보호할 것이란 트럼프 대통령의 장담과 달리 원자재 및 중간재를 수입하는 미국 제조업체의 비용을 급등시켜 물가를 높이고 일자리를 줄이며 수요를 위축시키는 역효과가 있을 것으로 내다본다.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공급망 재편이 이뤄진다고 하더라도 상당한 기간이 소요되는 만큼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 공급망이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 3개국에 촘촘하게 걸쳐 있는 자동차 업계의 피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영국의 주간 이코노미스트는 "자동차 제조업은 북미 3개국에서 내연기관 엔진 부품처럼 복잡하게 상호연관돼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는 미국의 자동차 업계를 강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울프리서치는 매년 멕시코·캐나다에서 미국으로 들어오는 자동차 부품이 970억 달러(약 135조4천억원)어치이며, 완성차가 400만대가량이라면서 25% 관세 부과 시 미국의 수입차 평균 가격이 3천 달러(약 418만원) 오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멕시코-미국 국경의 화물트럭
[AFP 자료사진]
석유화학 분야의 타격도 전문가들이 크게 우려하는 지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필요한 원유를 전부 가지고 있다"라고 공헌했지만, 캐나다산 석유와 미국의 정유업계가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 구조여서 파급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
미 에너지정보청(EIA) 통계에 따르면 미국의 캐나다산 원유 수입량은 지난해 10월 기준 하루 460만 배럴에 달했다. 같은 기간 미국의 하루 원유 생산량 1천350만 배럴의 3분의 1에 달하는 규모다.
특히 미국 중부 지방의 정유사들이 캐나다산 중질유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캐나다산 원유에 관세가 부과될 경우 석유제품 생산량 감소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를 낳아왔다.
실제로 정유업체 발레로 에너지는 앞서 관세가 캐나다산 원유에 영향을 미치면 휘발유 생산을 줄일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다.
미 캘리포니아주 한 슈퍼마켓에 진열된 토마토와 아보카도
[EPA 자료사진]
농산물 등 일반 미국 소비자의 장바구니 물가도 오를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특히 미국이 토마토, 아보카도, 레몬 등 주요 과일·농산물을 멕시코에서 대규모로 수입하는 데다 겨울철에는 수입 비중을 더욱 늘린다는 점에서 이번 관세 부과는 미국 슈퍼마켓 진열대의 신선식품 가격 인상을 곧바로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에드 그레서 미국 진보정책연구소 국장은 "멕시코·캐나다 관세 부과의 가장 직접적인 영향은 미국의 물가 상승"이라며 "특히 북미 무역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에너지, 자동차, 가전제품, 농산물에서 가격 인상 효과가 두드러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마르셀로 에브라르 멕시코 경제 부장관도 이날 "냉장고와 컴퓨터, TV, 맥주, 과일 가격도 상승할 것이고, 미국 소비자는 이런 제품의 부족에 직면할 수 있다"며 미국의 관세 부과가 전략적 실수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진행한 언론과의 문답에서 "관세는 인플레이션을 초래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이런 우려를 일축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로이터 자료사진]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이 자리에서 향후 수개월 내에 철강, 알루미늄, 석유, 가스, 의약품, 반도체 등에도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예고해 이번 관세 부과가 서막에 불과할 수 있음을 예고했다.
이들 품목은 트럼프 대통령이 그동안 관세 부과 방침을 예고해온 대상들이다. 다만, 이날 관세 부과 대상국과 세율 등 구체적인 관세 부과 내용에 대해선 추가로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유럽연합(EU)에 대해서도 "우리를 매우 나쁘게 대우했다"라면서 향후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관세 전략은 결국 상대국의 보복관세를 불러일으키며 피해가 심화하는 악순환을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도 나온다.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은 지난 29일 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위협에 대해 "만약 일어나더라도 우리에겐 대응 계획이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 역시 관세 부과 시 부과 수준에 비례한 맞대응 전략을 예고했다.
일각에선 캐나다가 철강, 세라믹, 유리, 오렌지주스 등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이 높은 지역의 생산품을 1단계 보복관세 부과 대상 품목으로 검토 중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민과 마약 문제에서 캐나다와 멕시코로부터 승리로 포장할 만한 양보를 얻어내기까지 관세가 단 몇 주간만 지속된다고 하더라도 그 혼란은 상당할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