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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시선] 나라 곳간 구멍 난 프랑스, 모나리자로 충당
기사 작성일 : 2025-02-06 09:01:00

모나리자 앞에서 박물관 보수·현대화 계획 발표하는 마크롱 대통령


[AFP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파리= 송진원 특파원 =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대표작 '모나리자'를 가진 프랑스는 얼마나 운이 좋은 나라인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루브르 박물관 내 모나리자 앞에 섰다.

박물관 측의 'SOS'에 박물관 보수·현대화 계획을 발표하기 위해서다.

루브르 박물관의 로랑스 데 카르 관장은 지난달 초 라시다 다티 문화장관에게 박물관이 "노후화"로 인해 위협받고 있다며 국가 재정 지원을 요청하는 메모를 전달했다.

이 메모에서 관장은 건물이 낡아 누수 현상이 발생하고, 실내 온도 조절 장비가 부실해 작품 보존이 위협받고 있으며, 기술 장비도 부실해 긴급한 현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휴식 공간과 식당이 방문객 증가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고, 1989년 문을 연 주 출입구인 유리 피라미드도 넘치는 방문객으로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고 호소했다.

수십 년 전 만들어진 피라미드 출입구는 연간 400만명의 방문객을 맞이하도록 설계됐 으나, 지난해 루브르 박물관의 방문객은 그 두배가 넘는 870만명에 육박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세계에서 방문객이 가장 많이 찾는 루브르 박물관의 명성에 흠집이 생기지 않도록 즉각 대응책을 내놨다.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가장 아름답고 가장 큰 박물관"을 현실에 맞게 복원하고 확장해 루브르를 재탄생시키겠다고 공언했다. 일명 '루브르, 새로운 르네상스'라는 프로젝트다.


루브르 박물관의 주 출입구인 피라미드 앞 방문객들


[로이터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포화 상태인 피라미드 출입구를 보조하기 위해 박물관 동쪽에 새로운 대형 출입구를 만들고, 박물관 지하에는 새로운 전시·안내 공간과 방문객 휴게 시설을 추가하겠다고 했다.

마크롱 대통령의 이날 발표 중 특히 눈에 띄는 건 모나리자의 재배치였다.

마크롱 대통령은 현재 다른 작품들과 한 공간에 전시된 모나리자를 따로 떼어 내 별도의 전용 전시실로 옮기겠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방문객들의 모나리자 관람 환경을 개선하고, 모나리자에 묻혀 '무시'당하는 같은 전시실 내 다른 작품들도 관심받을 수 있게 한다는 취지다.

실제 모나리자를 보기 위해 해당 전시실을 찾은 방문객이라면, 인파에 치여 멀리 통제선 안에 걸려 있는 모나리자는 겨우 보고 대신 사람 구경만 잔뜩 하다 돌아간 경험이 있을 것이다.

문제는 박물관 보수·현대화 작업에 드는 돈이다.

이 작업엔 최소 4억 유로(약 6천억원)에서 최대 8억 유로(약 1조2천억원)의 비용이 들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현재 국가 재정 상태가 위험 수준인 프랑스로서는 상당한 비용 부담이다.

프랑스의 지난해 3분기 기준 공공 부채는 3천303억 유로(498조원)로, 국내총생산(GDP)의 113.7%에 달했다. 유럽연합(EU)의 기준인 GDP 대비 60%를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다. 지난해 재정 적자 역시 GDP 대비 6%에나 달했다. EU의 기준치는 GDP 대비 3%다. 복지 국가 모델을 추구하며 그동안 공공 지출을 늘려온 반면 경제 성장 둔화로 세수는 줄어든 탓이다.

이에 프랑스 정부는 2025년도 예산안에서 공공 지출을 대폭 삭감하고 대기업·부자 증세를 통해 세수를 추가 확보하기로 했다.


모나리자를 보기 위해 몰려든 관람객들


[로이터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허리띠를 졸라매도 시원찮은 상황에서 박물관에 재정을 투입해야 하는 현실을 맞닥뜨린 프랑스는 방문객들의 주머니에서 답을 찾았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발표에서 내년 1월1일부터 비(非)유럽 방문객들을 상대로 현재 일반 22유로(약 3만3천원)보다 더 비싼 입장료를 받겠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액수는 공개되지 않았다.

루브르 박물관은 지난해 2024 파리올림픽을 앞두고도 관광객이 몰릴 것을 고려해 연초 박물관 입장료를 기존 17유로(2만5천원)에서 22유로로 30%나 인상한 바 있다.

프랑스는 이에 더해 특별 전시실에 배치할 모나리자를 위해 별도의 유료 티켓을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데 카르 박물관장은 지난 2일 라디오 프랑스 앵테르에 출연해 "루브르 박물관이 공공 재정이나 프랑스 국민의 지갑에 부담이 돼서는 안 된다"며 "티켓 판매와 후원"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겠다고 말했다.

데 카르 관장은 특히 모나리자를 보려는 사람들은 상설 전시를 위한 입장권 외에 별도 입장권을 추가로 구매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방문객들이 박물관의 다른 작품들도 감상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모나리자만을 위한 단독 입장권은 판매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데 카르 관장은 "우리의 제안은 모나리자의 특별한 위상에 걸맞은 것"이라며 "모나리자는 루브르 박물관의 축복"이라고 말했다.

루브르 박물관에 따르면 지난해 방문객의 23%는 프랑스인, 77%는 외국인들이었다.

외국인은 주로 미국(13%)과 프랑스 인접 국가들(이탈리아·영국·독일 각 5%, 스페인 4%)에서 왔다. 코로나19 이후 대폭 줄어든 중국 방문객은 2023년 전체의 2.4%에 불과했다가 지난해 6%로 다시 증가했다.

지난해 루브르 박물관 방문객의 28%는 무료입장권을 이용했다. 프랑스 방문객은 65%가 무료로 입장했다.


모나리자를 보기 위해 몰려든 구름 인파


[로이터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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