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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뉴] 송대관의 시작과 끝 '해뜰날'
기사 작성일 : 2025-02-10 13:01:11

김재현 선임기자 = 50년 전인 1975년. 오아시스레코드에서 발매한 송대관의 독집 음반 타이틀곡이 선풍을 일으켰다. 송대관이 직접 작사하고 신대성이 작곡한 '해뜰날'이었다. '쨍! 하고'의 강렬한 후렴구가 대중의 혼을 쏙 빼놨다. 4년 만에 다시 수록된 '세월이 약이겠지요'도 덩달아 히트치면서 송대관은 단번에 스타덤에 올랐다. 혜성같이 나타난 송대관은 다음 해 최고 권위의 MBC 10대 가수로 선정되고 가수왕까지 꿰찼다. 남자 트로트계를 양분하던 나훈아·남진의 전성시대에 금이 간 순간이었다.


송대관이 열창하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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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뜰날'에는 시골 촌놈이었던 송대관의 청춘이 담겨있다. 전라북도 정읍 시골에서 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송대관은 찢어지는 가난 속에서도 고등학교(전주 영생고) 졸업장을 쥐려고 온갖 궂은일을 했다. 새벽에 신문 배달을 하고 방과 후엔 학교 주변 이발소에서 머리를 감아주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렇게 해 겨우 고등학교를 졸업한 송대관은 차표 한장에 단돈 20원을 갖고 무작정 상경했다. 데뷔곡 실패 후 여러 번 좌절하면서도 '해뜰날' 가사처럼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올 거라 믿고 밤무대를 뛰었다. 인생을 다 아는 듯한 서글서글한 눈빛과 '쨍!'하고 부를 때 나오는 턱 꺾는 동작, 어머니 장국 맛의 구수한 목소리…서른 살에 송대관의 해가 뜬 날은 거저 찾아온 게 아니었다.

'해뜰날'은 표절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미국의 제이 가일스 밴드(The J. Geils Band)가 1981년에 발표한 '센터폴드(Centerfold)'의 인트로와 닮아서였다. '센터폴드'가 5주간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달리자 국내 가요계에서 소송을 걸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게 일었지만, 아무 일 없이 넘어갔다. 표절 논란은 이후 반전을 맞았다. '세라비(C'est la vie:그것이 인생)로 유명한 영국의 록밴드 '에머슨, 레이크 앤드 파머(Emerson, Lake & Palmer)'의 1972년 발표곡 '셰리프(The Sheriff)'가 '해뜰날'의 멜로디와 비슷하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하지만 작곡가 신대성은 우연의 일치라며 웃어넘겼다.


'해뜰날' 담긴 송대관 독집앨범


[오아시스레코드사 1975년 발매한 송대관 앨범 앞면 캡처]

신대성이 작고한 뒤 2015년 그의 고향인 안동에 '안동댐 수몰 40주년 만남의 날' 기념비가 건립되면서 '해뜰날' 기원의 미스터리가 풀리게 됐다. 신대성이 수몰 전 송대관과 함께 안동을 찾아 댐 건설로 쫓겨나게 된 고향 사람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을 생각으로 작곡한 노래가 '해뜰날'이었다는 것이다. 훗날 반드시 성공해 고향에 '쨍!' 하고 나타나겠다는 그날 실향민들의 다짐이 생생하게 들려온다.

송대관이 동료 가수들이 합창한 '해뜰날'을 인생의 엔딩곡으로 영면에 들었다. "가수는 무대에서 시작해 무대에서 생을 마감한다"는 설운도의 말대로 송대관은 갑작스럽게 삶을 마감하기 전까지 무대에 올랐다고 한다. 얼마 전 트로트 4대 천왕 현철도 떠나보냈기에 송대관의 빈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질 것 같다. 이렇게 역사의 한 페이지가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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