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대기 중인 완성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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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경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철강, 알루미늄에 대해 25%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한 데 이어 우리나라 수출의 두 축이라고 할 수 있는 자동차와 반도체에 관세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국내 산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해 대미(對美) 수출에서 자동차와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총 35%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전체 수출에서 미국 비중이 50%에 육박하는 자동차 업계는 관세 부과 시 현지 가격 상승에 따른 판매 감소가 불가피해 직격탄을 맞을 전망이다.
이에 따라 자동차, 반도체 주요 기업들은 관세 부과 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트럼프의 미국중심 관세 폭탄, 한국 대미 수출 충격 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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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車 대미수출 비중 49.1%…현지생산 등 대책 고심
11일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자동차 수출액은 707억8천900만달러로, 이중 대미(對美) 수출액은 347억4천400만달러로 비중이 49.1%에 달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대규모 적자를 보고 있는 국가와 산업에 중점적으로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는데 자동차 및 관련 부품은 미국의 대(對)한국 무역적자 비중이 71.9%로 가장 커 관세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대미 자동차 수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현대차와 기아, 한국GM의 위기감도 증폭되는 모양새다.
그동안 한국은 한미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관세 없이 자동차를 미국으로 수출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계속된 '무역적자' 발언으로 관세 부과의 사정권에 들 가능성이 더욱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현대차·기아의 미국 수출물량은 약 97만대(현대차 61만대·기아 35만7천대) 가량으로, 지난해 현지 판매량의 57% 정도에 해당한다. 한국GM의 수출물량도 반조립제품(CKD)을 포함해 40만대에 달한다.
이에 따라 국내 완성차기업들은 관세 부과에 대비해 현지 생산 확대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현대차그룹은 미국에 최근 완공한 조지아주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에 더해 현대차 앨라배마공장, 기아 조지아공장을 보유하고 있다.
그룹은 관세가 현실화할 경우 HMGMA(50만대)와 앨라배마공장(33만대), 조지아공장(35만대)의 연간 생산능력을 끌어올려 현지 생산량을 최대 118만대까지 늘릴 계획이다. 지난해 현대차, 기아의 미국 내 판매량이 170만대가량임을 고려하면 70%에 가까운 수치다.
다만 한국이 미국의 자동차 관세를 피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연합(EU)은 미국 자동차에 10%의 관세를 부과한 반면 미국은 유럽산 자동차에 2.5%의 관세만 부과하고 있다"며 자동차 관세의 첫 타깃이 유럽이 될 것임을 명확히 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미국 대표 완성차업체인 GM의 한국 생산기지인 한국GM이 미국에 연간 41만대 가량을 수출하는 상황에서 한국에 대해 관세를 부과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백악관이 지난 2일 배포한 설명자료에서 현대차그룹의 대규모 투자(205억달러)와 HMGMA를 '관세 카드 효과의 모범사례'로 꼽은 것도 한국이 자동차 관세를 피할 수 있다는 전망의 근거다.
강성진 KB증권 연구원은 "미국이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추가 관세 카드를 고집할 가능성은 작고, 협상 카드로 활용할 가능성은 있다고 판단한다"며 "이미 멕시코 등에 관세가 부과된 상황에서 한국산 자동차에 추가 관세를 부과될 시 미국으로 공급되는 자동차 비용이 오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자동차 관세 검토하는 미국, 한국 자동차 업계 충격 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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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도체, HBM 수요에 대미 매출↑…"관세 영향 크지 않을 수도"
반도체는 자동차에 비해 대미 수출 비중이 크지 않다.
하지만 최근 인공지능(AI) 열풍에 따라 북미 시장 의존도가 늘어나는 추세라 국내 반도체업계는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메모리 수출액(720억달러)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0.4%(3억달러)에 그쳤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중국과 한국 생산기지에서 만든 제품들은 대만, 베트남 등 다른 국가에서 조립·가공을 거쳐 판매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엔비디아, AMD 등 AI 가속기에 탑재되는 고대역폭메모리(HBM) 매출이 늘어나면서 이들 기업의 북미 매출도 크게 증가했다.
특히 AI용 고성능 반도체와 솔리드 스테이트 드라이브(SSD) 수요가 늘면서 지난해 대미 반도체 수출액은 전년 대비 123% 증가했다.
트럼프의 반도체 관세 현실화 시 국내 메모리 반도체의 가격 경쟁력이 단기적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글로벌 IT 기기 수요 부진과 중국 반도체 업체들의 범용 메모리 저가 공세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다만 HBM의 경우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전 세계 HBM 시장의 90%를 차지하고 있어 생각보다 관세 영향이 크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미국 빅테크들은 반드시 HBM이 필요한 상황이고, 삼성과 SK하이닉스가 시장을 주도하고 있어 메모리 관세 영향은 생각보다 제한적일 수 있다"며 "이 같은 상황을 돌파하려면 빅테크와 협력이 특히 중요하고, 삼성의 경우 HBM 메모리 공급과 파운드리 수주를 받는 게 급선무"라고 짚었다.
김 단장은 "'관세 전쟁'으로 이어지면 반도체가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가전제품 등의 가격이 올라 미국 물가가 오를 수 있어 실제 트럼프 행정부가 반도체에 관세를 부과할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AI 반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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