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중인 하워드 막스 오크트리 회장
(뉴욕= 하워드 막스(78) 오크트리캐피털 회장이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오크트리 사무실에서 열린 한국 언론과의 공동 인터뷰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25.2.2 photo.yan.co.kr [에이미 메이즈(Amy Mayes) 포토그래피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뉴욕= 이지헌 특파원 = 월가에서 '투자의 구루(스승)'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하워드 막스(78) 오크트리캐피털(이하 오크트리) 회장은 한국 경제가 정치적 격변으로 불확실성을 거치고 있지만 한국의 제도가 이를 해결할 것이란 신뢰를 가지고 있으며 한국 경제에 대한 긍정적인 견해를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으로 불확실성이 커졌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가적인 성향을 고려할 때 향후 6개월 이내에 미중 관계에서 진전을 이룰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막스 회장은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의 오크트리 사무실에서 열린 한국 언론 공동인터뷰에서 한국과 미국의 정치적 불확실성 확대에 관해 이처럼 진단했다.
막스 회장은 자신이 한국 전문가는 아니라고 전제한 뒤 "한국이 불확실성의 시기를 지나고 있지만 한국의 제도가 이를 해결할 수 있다는 신뢰를 가지고 있다"며 "특히 현재 한국 정부가 경제부총리(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에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은 매우 잘 운영되는 나라이며, 교육 수준이 높고, 강한 윤리를 가지고 있으며, 매우 효율적이고 체계적"이라며 "우리는 오랫동안 한국 증시에 투자해왔고,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며, 투자 대상을 계속 물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최근 한국 자본시장과 기업의 주주가치 제고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트럼프 행정부에 대해선 트럼프 대통령의 예측 불가능한 행보로 인해 경제 전망이 더욱 불확실해졌다고 판단했다.
막스 회장은 과거 미국 대통령의 화법과 달리 트럼프의 발언은 실제 실행 의도가 있는지 알 수 없다면서 "어떤 상황에 직면했을 때 특정 조치를 취하겠다고 위협하고, 양보를 얻어내고, 승리를 선언하는 패턴이 임기 내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말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은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나타날 것으로 전망했다.
막스 회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예측 불가능한 행보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협상 테이블로 불러들일 수 있다면서 "향후 6개월 이내에 미중 관계의 진전에 대한 발표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며 "트럼프는 자신이 그토록 즐기는 승리 선언을 하게 될 것이고, 긴장은 완화될 것"이라고 낙관했다.
그는 "중국이 내수와 이란, 북한, 러시아의 수요만으로는 목표로 하는 5%의 성장률을 달성할 수 없고, 나머지 세계로부터의 수요도 필요하다"며 "중국은 나머지 세계와 적대적 관계를 만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자신의 이 같은 견해가 다소 낙관적이라는 점을 인정했다.
발언 중인 하워드 막스 오크트리 회장
(뉴욕= 하워드 막스(78) 오크트리캐피털 회장이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뉴욕 오크트리 사무실에서 열린 한국 언론과의 공동 인터뷰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25.2.2 photo.yan.co.kr [에이미 메이즈(Amy Mayes) 포토그래피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한편 막스 회장은 미국 경제가 1980년 이후 이어져 온 금리 하락의 시대가 끝나고 투자환경이 과거와는 다른 '대변환'(sea change)의 시기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제 저금리 시대는 끝났다고 생각한다"며 "경제성장은 더 느려질 수 있고, 기업이익이 감소하고, 투자심리가 예전처럼 일관되게 긍정적이지 않을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그는 그동안 빚을 내 고위험 자산에 투자하는 전략이 수십년간 좋은 성과를 거둬왔다면서도 "금리 하락 환경에서 잘 작동했던 투자전략들이 앞으로도 가장 잘 작동할 것이라고 기대해선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미 경제의 가장 큰 위험 요인으로는 연방정부의 재정적자 지속을 꼽았다.
그는 "미국은 한도가 무제한이고 청구서도 받지 않는 신용카드를 가진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다"며 "청구서가 언젠가 온다면, 그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 증시는 대형 기술주인 '매그니피센트 7'에 힘입어 지난 2년간 탁월한 성과를 냈지만, 역사적으로 매우 높은 밸류에이션(가치평가) 탓에 향후 10년간 기대수익률이 회사채 등 신용자산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내다봤다.
앞서 골드만삭스의 주식전략팀은 지난해 10월말 낸 보고서에서 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의 총수익률(배당재투자 포함)이 향후 10년간 연평균 3%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막스 회장도 골드만삭스의 이런 전망을 인용했다.
다만, 미국 증시가 '거품' 상황에 있다고는 진단하지 않았다. 그는 "거품 시기에는 '포모'(FOMO·뒤처지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어떤 가격도 너무 높다고 생각하지 않게 된다"면서 최근 미국 증시에선 거품 상황에서 관찰되는 행태적·심리적 양상이 발견되지는 않는다고 판단했다.
막스 회장은 "시장에서 지금 당장 빠져나가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라며 "다만, 위험회피 성향이거나 은퇴가 가까워졌다면 포트폴리오의 공격성을 다소 낮출 수 있다"라고 조언했다.
그는 미국 주식의 기대수익률이 낮아졌다는 점을 고려해 회사채 등 신용자산에 대한 투자 비중을 늘리는 것을 투자 대안으로 권고했다.
오크트리는 주식, 채권, 부동산, 대체자산 등 다양한 자산군에 투자하는 펀드를 운용하지만, 특히 채권 등 신용자산 투자에 강점을 가지는 운용사로 평가받는다. 오크트리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총운용자산은 2천20억 달러(294조원)에 달한다.
막스 회장 역시 부실채권이나 하이일드채권, 전환사채 등 신용자산 부문에서 오랜 경력을 쌓아왔다.
그가 메모 형식으로 고객에게 보내는 서한은 시장 기회와 위험에 대한 남다른 통찰을 담은 것으로 유명하다. 워런 버핏 버크셔헤서웨이 회장도 "메일함에 하워드 막스의 메일이 보이면 맨 먼저 읽는다"라고 할 정도로 글로벌 투자업계의 신뢰를 받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