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기상캐스터로 일한 고(故) 오요안나씨
[오요안나씨 인스타그램 캡처. DB 및 재판매 금지]
이승연 기자 = MBC 프리랜서 기상캐스터 고(故) 오요안나 씨는 근로자일까 아닐까.
지난해 9월 세상을 떠난 오씨가 생전 직장내 괴롭힘에 시달렸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지난달 27일 일부 언론사를 통해 오씨의 유서가 보도되고, 유족이 MBC 직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한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다.
이에 고용노동부는 지난 4일 오씨의 '근로자성' 여부 검토에 나선다고 밝혔다. 오씨의 사망 배경으로 직장내 괴롭힘을 확인하기에 앞서 오씨가 '근로자'에 해당하는지를 먼저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노동부가 오씨의 근로자성을 살피는 이유는 직장내 괴롭힘 방지법이 근로기준법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해야 직장내 괴롭힘 보호법을 적용받을 수 있는 것이다.
최근 방송업계 프리랜서의 근로자성을 인정한 법원·노동부 결정이 잇달아 있었던 만큼 향후 노동부가 내릴 프리랜서 기상캐스터 오씨에 대한 판단에 이목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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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기준법은 근로자를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으로 규정한다.
근로자성을 판단하는 데 가장 중요한 건 '사용종속관계'다. 즉, 회사의 지시·관리·통제 아래에서 일을 했는지 여부다.
민법상 사측과 개인 간 계약에 해당하는 프리랜서는 업무 수행의 자유가 있고 겸업이 가능하다 것이 특징이다.
다만 프리랜서라 하더라도 노무를 제공한 자와 사용자 사이에 사용종속관계가 유지되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될 수 있다.
종속 관계는 ▲ 사용자의 업무 지시 여부 ▲ 사내 규정 적용 여부 ▲ 사용자의 지휘·감독 여부 ▲ 근무시간 및 장소 지정 여부 ▲ 작업 도구 제공 여부 ▲ 보수 지급 방식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한다.
이같은 사용종속관계를 근거로 최근 대법원으로부터 근로자성을 인정받은 프리랜서 아나운서가 있다.
지난해 12월 대법원은 일방적 계약 해지 통보를 받은 프리랜서 아나운서 A씨가 KBS를 상대로 낸 민사 소송에서 A씨의 손을 들어준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A씨가 방송국의 지휘·감독에 따라 정규직 아나운서와 동일한 업무를 수행한 점, 다른 방송에 출연하지 않고 회사에 전속된 점, 근무 일정이나 장소를 회사가 정한 점, 방송 출연 건별로 급여를 받은 점, 휴가 일정을 사측에 보고·관리받는 시스템이었던 점 등을 근거로 A씨의 근로자성을 인정했다.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오기 전인 2023년 조상균 전남대 로스쿨 교수는 이 사건에 관한 논문에서 "이 판결은 프리랜서 계약을 체결한 아나운서의 근로자성이 논란이 되는 상황 속 행정법원이 아닌 민사법원에서 근로자성을 인정한 최초의 판결"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이 판결의 결과는 아나운서뿐 아니라 작가, PD 등의 근로자성 논란에 많은 영향을 줄 수 있어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류영석 기자 =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2019년 7월 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직장갑질119 관계자들이 설치한 관련 안내판 뒤로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 자료사진] 2025.2.6
또 2021년 노동부는 KBS·MBC·SBS와 각각 프리랜서 계약을 체결한 152명의 방송작가에 대해 근로자성을 인정했다.
노동부는 작가들이 위탁계약에 따른 원고 집필 외에 사측 요청으로 다른 업무도 함께 수행한 점, 방송사로부터 상당한 지휘·감독을 받은 점 등을 고려해 근로자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일부 작가들에 대해서는 원고 집필에 관한 상당한 재량이 있고, 일방적 지휘·감독이 아닌 협업 관계에서 독립적으로 업무를 수행했으며, 프로그램 제작에 대한 상당한 책임 및 권한을 갖고 있어 사용존속관계를 단정 짓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근로자성 판단 논란은 작년 말 아이돌그룹 뉴진스의 멤버 하니를 둘러싸고도 불거진 바 있다. 노동부는 소속사인 하이브 내에서 따돌림을 당했다고 주장한 하니에 대해 근로자로 볼 수 없다며 직장내 괴롭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결론지었다.
의원 질의에 답하는 뉴진스 하니
뉴진스 하니가 작년 10월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2025.2.6.
이번 오씨 사건은 방송업계의 프리랜서 채용 관행이 지닌 문제점을 다시 한번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2020년 12월 발표한 '방송사 비정규직과 프리랜서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방송산업 노동자 1만6천676명 중 비정규직·프리랜서 등 불안정 노동자는 42%(6천999명)다. 국내 공공부문 방송사 중 3곳은 프리랜서 비중이 전체 인력의 3분의 2가 넘었다.
방송사 프리랜서 중 71.2%는 여성이었으며 대부분 20∼30대였다. 이들은 작가, 아나운서, 리포터, 캐스터 직군으로 근무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의 윤지영 변호사는 6일 "최근 법원이 방송업계 프리랜서의 근로자성 판단에 있어 업계 특수성을 고려하는 추세"라며 "설령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볼 수 없다더라도 노동부는 직장내 괴롭힘 여부를 면밀히 조사해 사측에 시정 권고하는 등 적극적으로 조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앞서 2021년 노동부는 상사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다 숨진 골프장 캐디 B씨에 대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어서 직장내 괴롭힘의 직접 적용이 불가하다"면서도 일부 직장 내 괴롭힘 행위를 인정해 골프장 측에 시정 권고를 내렸다.
근로기준법이 아닌 산업안전보건법을 통해서도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보호할 수 있다.
지난해 5월 대법원은 산업안전보건법상 사용자의 근로자 보호 의무를 근거로 사측이 B씨 유족에게 1억7천여만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하급법원 판결을 확정했다.
윤 변호사는 "산업안전보건법상 사용자가 보호해야 할 근로자에는 특수고용노동자, 배달노동자 등이 포함된다"며 "여기에 방송 프리랜서를 포함해 근로기준법의 한계를 보완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