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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총선 D-14] 머스크 지원사격…유럽 극우 돌풍 어디까지
기사 작성일 : 2025-02-09 08:00:57

일론 머스크


[로이터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베를린= 김계연 특파원 = 오는 23일(현지시간) 치러지는 독일 총선은 최근 몇 년 새 반이민 정서를 등에 업고 세를 불린 유럽 극우 정치세력에도 분기점이자 절호의 기회가 될 전망이다.

극우 독일대안당(AfD)은 갖은 논란에도 20% 안팎의 창당 이래 최고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최근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측근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지원사격에 나섰다. AfD가 현재 지지율대로 제2당을 차지할 경우 독일을 포함한 유럽에서 극우 세력 목소리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 '극우 방화벽' 아슬아슬

AfD가 단독으로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않는 한 집권 가능성은 희박하다. 다른 원내 정당들이 모두 AfD를 민주주의의 적으로 여기고 AfD와 협력하지 않는 걸 원칙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제1야당 기독민주당(CDU)은 지난달 난민정책 전환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발의하고 AfD 의원들 찬성으로 통과시켰다가 방화벽을 깼다는 거센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20% 안팎의 지지율만으로도 의회 정치지형에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정당투표 득표율대로 의석을 배분하는 독일 선거제도 특성상 AfD를 빼고 나면 연립정부 구성 자체에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지난해 9월 주의회 선거에서 AfD가 제1당을 차지한 튀링겐주에서는 AfD를 제외하고 주정부를 구성하느라 적잖은 혼란이 벌어졌다. AfD의 2021년 총선 득표율은 10.4%였다.


AfD 규탄 집회


[EPA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SPD는 물론 CDU 소속인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까지 결의안을 비난한 건 CDU가 정권을 잡기 위해 금기를 깨고 AfD와 연정을 꾸릴 수도 있다는 의심 때문이다.

현재 지지율대로면 CDU·기독사회당(CSU) 연합과 사회민주당(SPD)이 좌우 대연정을 꾸려야 간신히 의석수 과반의 다수정부가 구성된다.

지금까지는 대체로 좌우를 대표하는 SPD와 CDU·CSU 연합이 다른 1개 정당과 연정을 꾸려왔다. 사상 처음으로 2021년 3개 정당이 함께 구성한 일명 신호등 연정의 붕괴는 진보 성향 SPD·녹색당과 친기업 우파 자유민주당(FDP)의 이념 차이에서 비롯했다는 분석이 많다.

◇ 트럼프에 탄력받은 유럽 극우

현재 유럽에서는 이탈리아·네덜란드·핀란드·슬로바키아·헝가리·크로아티아 등지에서 극우 내지 강경 우파 세력이 집권하고 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사실상 나치를 계승한 것으로 평가받는 자유당이 '방화벽'을 깨고 연정 참여를 협상 중이다. 스웨덴과 프랑스·영국에서도 극우 정치세력이 적잖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작년 6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이미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가 주도하는 극우 포퓰리스트 성향 '유럽을 위한 애국자'(PfE)가 전체 720석 가운데 84석,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속한 '유럽 보수와 개혁'(ECR)이 78석을 차지해 영향력을 키웠다.


AfD 유세에 화상 연설하는 일론 머스크


[EPA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이들은 트럼프 미국 행정부 출범과 머스크의 지원을 기회 삼아 세력 확장을 노리고 있다.

유럽 우파 포퓰리즘의 선봉장 오르반 총리는 지난 7∼8일 프랑스 국민연합(RN)의 마린 르펜 하원 원내대표, 네덜란드 자유당(PVV)의 헤이르트 빌더르스 대표 등 PfE 소속 인사들과 스페인 마드리드에 모여 세를 과시했다.

AfD는 지난해 유럽의회 선거 직전 나치 옹호 파문을 일으켜 극우 교섭단체 '정체성과 민주주의'(ID)에서 퇴출당했다. 현재 '주권국가의 유럽'(ESN)이라는 이름의 교섭단체를 따로 꾸렸지만 범우파 진영과 연대를 계속 시도하고 있다.

알리스 바이델 AfD 공동대표는 오는 12일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찾아가 오르반 총리를 만난다. 오르반 총리는 "AfD는 20% 이상 득표할 수 있다. 그들의 지도자가 나와 대화하길 원한다면 내가 왜 거절해야 하냐"고 말했다.

이들 유럽 범우파 정치세력은 대체로 EU의 영향력 확대에 반대하며 회원국 각자 주권과 결정권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크라이나 지원에 회의적이면서 러시아·중국 등 반서방 진영에 우호적이다.

오르반 총리는 지난해 하반기 헝가리가 EU 순회의장국을 맡자마자 '평화 임무'를 자처하며 러시아와 중국을 차례로 방문해 논란을 빚었다. 그는 당시 트럼프 대통령을 따라 내건 구호 '유럽을 다시 위대하게'(MEGA)를 이제는 유럽 극우 세력 결집에 활용하고 있다.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


[로이터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 독일 정보기관, AfD 극우 인증

난민에 적대적이고 유럽 통합보다 트럼프식 고립주의를 선호하는 유럽 정치세력을 흔히 극우라고 뭉뚱그려 부른다. 하지만 이들의 이념이 모두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의 이탈리아형제들(FdI)은 집권 이후 우크라이나의 EU 가입에 찬성하고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는 등 더 이상 극우로 규정하기 어렵다는 견해가 많다.

AfD도 처음부터 '극우'는 아니었다. 2013년 창당 때만 해도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 구제금융에 대한 독일 유권자들의 불만에 편승해 유로존 탈퇴 등 경제적 보수주의를 내건 포퓰리즘 정당이었다. 당명을 직역하면 '독일을 위한 대안'(Alternative für Deutschland)이다.

그러나 2010년대 중반부터 중동과 아프리카 난민이 밀려들고 당내 권력투쟁 과정에서 온건파가 축출되면서 우익 극단주의로 치달았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에는 전염병이 정치적으로 기획됐다는 음모론에 동조하며 방역에 반대했다. 지금은 자신들을 지지하는 머스크에 대해 "사람들 머리에 칩을 심으려 한다"고 비난한 적도 있다. 지난달에는 '아버지와 어머니, 자녀로 구성되는 가족'을 사회의 핵심 단위로 정의하며 '워크(woke) 사회'에 반대한다고 선언하는 등 우익 포퓰리즘을 전 분야로 확장했다.


비외른 회케 AfD 튀링겐주 대표(2016년)


[AP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AfD는 정치 행사에서 사실상 금기시하는 독일 국기를 흔드는 등 나치에 대한 독일인들의 '숨겨진 향수'를 자극하는 전략을 구사한다고 의심받는다. 지지자들은 바이델 대표를 총리 후보로 추대한 이후 '알리스 퓌어 도이칠란트'(독일을 위한 알리스)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거의 똑같이 들리는 '알레스 퓌어 도이칠란트'(모두 독일을 위해)는 나치 준군사조직 돌격대(SA) 구호로 나치 경례와 함께 형사처벌 대상이다.

독일 국내 정보기관인 헌법수호청은 AfD 작센·작센안할트·튀링겐주 지부를 극단주의 단체로, AfD 중앙당과 바덴뷔르템베르크 등 6개주 지부를 극단주의가 의심되는 단체로 지정해 도감청을 통한 감시를 허용하고 있다. 정부가 AfD를 극우로 사실상 인증한 셈이다.

당을 이끄는 바이델 공동대표가 스리랑카 출신 동성 배우자와 두 자녀를 입양에 키우고 있는 점은 아이러니다. 그는 지난해 언론 인터뷰에서 "나는 퀴어가 아니고 20년간 알고 지낸 여성과 결혼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기성 정치권에 대한 독설을 즐기는 그는 중국 경제 전문가로 골드만삭스에서 일하다가 AfD에 합류했다. 할아버지가 나치 간부이자 군사법원 판사로 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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