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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살 딸 버린 조선족 엄마…주민번호 바꾸며 두 번 버렸다"
기사 작성일 : 2025-01-26 09:00:30

모녀, 엄마와 어린 딸(PG)


[이태호 제작] 일러스트

김현수 기자 = 서울 서초구에 사는 A씨(31)는 4살 무렵 조선족인 어머니 김모 씨로부터 버림받은 아픈 기억이 있다.

어머니 얼굴도 모른 채 아버지 밑에서 자란 A씨는 중학생 시절 문득 어머니의 행방이 궁금해 주민센터에서 가족관계증명서를 발급받았다. 그러나 김씨의 주민등록번호는 말소된 상태였다.

어머니가 사망했거나 행방불명된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A씨는 실낱같은 희망을 못 버려 사설탐정, 흥신소 등에도 도움을 요청했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양육비는 고사하고 친모에게 버림받았다는 정서적 고통을 견뎌온 지 어느덧 20여년. A씨는 지난해 8월 인스타그램에서 우연히 김씨의 것으로 추정되는 한 계정을 발견했다.

김씨의 얼굴은 몰랐지만, 중국어 게시물이 많은 데다 계정 아이디가 김씨 이름의 뜻과 생년월일을 조합한 형태인 걸 보고 어머니란 걸 직감했다.

계정 주인이 경기 성남의 한 백화점에서 일한다는 걸 확인한 A씨는 수소문 끝에 마침내 그가 자신의 친모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렇게 A씨는 극적으로 어머니와 재회했다. 김씨는 딸에게 어릴 적 사진을 보여주며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러나 새 삶의 희망도 잠시뿐이었다. 김씨가 다시 연락을 끊어버린 것이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던 A씨는 정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또 한 번 벽에 부딪혔다. 김씨가 자신의 친모라는 걸 입증해야 할 상황이 된 것이다.

경찰 등에 따르면 김씨는 A씨를 버린 이후 한국 국적이 말소됐고, 국적을 재취득하면서 2009년 새로 주민등록번호를 얻었다. 이에 따라 김씨는 서류상으로 더는 A씨의 모친이 아니었다.

설상가상으로 김씨는 재혼해 아들과 함께 새살림을 꾸렸다. 친딸의 존재를 숨기려고 김씨가 일부러 주민등록번호를 바꿨을 수 있다는 게 A씨의 생각이다.


어린 시절의 A씨


[본인 제공]

이런 상황이 되고 만 것은 김씨가 국적을 재취득하는 과정에서 가족관계등록부가 새로 만들어진 데 있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다시 한국 국적을 받으면서 가족관계등록부를 새롭게 창설함에 따라 새로운 사람이라고 판단해 주민번호가 신규로 부여됐다"며 "가족관계등록부가 새롭게 만들어지면 과거 이 사람에게 (한국) 국적이 있었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외국인의 국적 회복 과정은 법무부가 신청받아 법원행정처에 수용 여부를 통지하고, 이에 따라 법원행정처가 가족관계등록부를 만들면 행정안전부가 주민번호를 발급한다.

외국인인 김씨가 국적 취득 신고 과정에서 자녀가 있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외국인이 한국 국적을 취득할 경우 국적법에 따라 '국적 취득 신고' 또는 '국적 회복 신고'를 해야 하는데, 이때 신고서에는 부모와 배우자의 성명 및 국적을 기재하게 돼 있으나 자녀의 성명과 국적을 기재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법률 전문가들은 김씨의 주민등록 과정이 위법은 아니라면서도 신분 세탁 등에 악용될 소지가 있다고 봤다.

이현곤 변호사(새올법률사무소)는 "외국인이 국적을 상실했다가 다시 들어올 경우 국적을 회복한 건지, 아니면 새로운 사람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며 "일종의 호적 세탁 방법 중 하나"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 국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고 새로 국적을 취득하면 (호적상) 연결이 안 된다"며 "국제적으로 호적 제도를 일치시킬 방법이 없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A씨는 법정에 호소할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 그는 "친자 확인 소송 등 법적 조치를 통해 모녀 관계를 명확히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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