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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마르크스-엥겔스 번역' 붐을 이끌다…김대웅씨 별세
기사 작성일 : 2025-02-14 08:01:10


오른쪽은 1987년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이라는 제목으로 새로 나온 고인의 번역서/왼쪽 [유족 제공], 오른쪽 [알라딘 캡처]

이충원 기자 = 1980년대 '마르크스-엥겔스 원전(原典) 번역' 붐을 맨 앞에서 끌고간 번역가 김대웅 전 백산서당 편집장이 지난 9일 오후 10시39분께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하인두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14일 전했다. 향년 만 69세.

1955년 12월5일 전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전주고, 한국외대 독일어과(74학번)를 졸업했다. 1981년 테다 스코치폴 교수의 '국가와 사회혁명'이란 책을 가명으로 번역해 까치출판사에서 출간하며 번역가로 데뷔했고 '라틴아메리카 노동운동사', '경제사 입문' 등을 펴냈다.

고인이 1980년대 사회과학 출판 시장에 남긴 대표적인 업적은 1985년 프리드리히 엥겔스(1820∼1895)의 '가족, 사적 소유, 국가의 기원'을 번역해 '가족의 기원'이라는 제목으로 아침출판사에서 출간한 것이다. 당국이 금기시하던 '마르크스-엥겔스 원전 번역' 붐의 서막을 장식했다.

1980년대 '백산서당', '두레출판사', '한울출판사', '한마당' 등 사회과학 출판사의 잇따른 설립에도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 백산서당 편집장으로 일하면서 본격적으로 마르크스주의 번역자로 활약, '마르크스·엥겔스 평전', '독일 이데올로기'를 펴냈다. '독일 이데올로기'는 고인의 번역 대표작으로 꼽힌다. '루카치 미학이론', '게오르그 루카치의 미학사상'도 우리말로 옮겼다.

1989년 독일에 가서 베를린 장벽을 목격한 뒤에는 1990년대 대중교양 수요에 맞춰 예술, 고고학, 신화학을 거쳐 패션, 음식 등 대중문화 전반을 소개하는 교양서적 출간에 앞장섰다. 말년까지 번역과 저술에 몰두했다. 1996년 '배꼽티를 입은 문화'를 번역해 약 20만 권을 팔았고, 지난해 7월 저서 '교과서 밖, 한국사'를 출간했다. 부인 지연희씨는 "1월 중순까지만 해도 니체가 쓴 책을 번역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1980년대 이화여대 앞 술집 '목마름'과 연세대 인근의 사회과학 서점 '오늘의책'에도 관여했다.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 국제교류국장을 거쳐 김대중 정부와 참여정부에서 문예진흥원 심의위원,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으로 활약했다. '진보문화계의 마당발' 혹은 '문화계 인사의 네트워커'로 통했다.

고인의 평생 꿈은 '마르크스-엥겔스 전집' 번역이었다. '오늘의 책' 시절부터 지인이라는 김재환씨는 "언젠가 꼭 전집을 번역하겠다고 하셨는데…"라고 했다. 부인 지씨는 "살아있을 때 종종 '즐거운 인생이었다. 누워있어서 미안하다. 다들 한잔 하자'고 장례식에 온 이들에게 전해달라고 했다"고 전했다.

12일 발인을 거쳐 경기도 벽제의 한 나무 밑에 안장됐다.

※ 부고 게재 문의는 팩스 02-398-3111, 전화 02-398-3000, 카톡 okjebo, 이메일 유족 연락처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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